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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May 13. 2021

팥찐빵까지 만들게 될 줄이야

매번 그 어려운 걸 해낸다


독일에선 병아리콩, 검정콩, 렌틸콩, 완두콩 그리고 신장 모양의 강낭콩까지 모두 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팥은 못 봤다. 그러니 한국에서 흔하고 익숙한 팥빵이 없다. 초콜릿 치즈 햄 넣은 크루아상이나 다양한 잼이 들어있는 빵은 많지만 팥소를 넣은 건 없다. 아시아 문화에 관심 많은 독일인 친구도 한국 여행을 다녀와서 신기해했던 게 팥소다. 당연히 팥죽과 팥빙수도 생소하긴 마찬가지. 


흔하게 먹을 수 있을 땐 귀한 줄 모르다가 없으면 아쉽다. 팥빵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영락없이 수수팥떡 닮은 빵을 보고 설마 하면서도 냉큼 주문했는데 자세히 보니 팥 크기의 초코가 콕콕 박힌 거였다. 초코 안엔 떡과 유사한 식감인 마치판(Mazipan)이 들어있고. 실망감이란 두 번 배신당한 느낌이랄까.


한인마트에서 한식 재료 주문 시 김치와 팥은 단골 리스트다. 가끔은 삼청동 <서울서 두 번째로 잘하는 집>에서 먹던 팥죽이 그립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파다 보면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는,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이젠 팥만 있으면 팥죽, 팥칼국수, 팥빙수와 팥소 넣은 찐빵까지 모두 가능한 경지에 이르렀다.


팥을 팔팔 끓인 후 첫 번 째 물은 따라 버린 후 은근한 불에 한 시간 정도 끓이다가 소금과 설탕을 넣어 팥알이 완전히 뭉개지기 전까지 푹 삶았더니 팥빙수에 얹어 먹는 달착지근한 팥소가 만들어졌다. 이 팥소가 또 만능이다. 곡물빵에 바르면 잼 대용으로 손색이 없고 요플레에 넣어도 든든한 간식으로 충분하다. 콩가루는 없지만 우유를 얼리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과일을 썰어 넣고 팥소를 얹으면 먹음직스러운 팥빙수 탄생이다. 유럽 사람들이 사랑하는 젤라토 아이스크림으론 더위 해갈 안 되는 여름날, 팥빙수는 더위를 한 방에 몰아내기에 제격이다. 


빙수라는 걸 처음 맛본 딸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팥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데 신기하게 맛있단다. 다시 보니 기발한 조합이긴 하다. 고소한 콩가루를 뿌리고 떡까지 올리면 정말 완벽할 텐데! 통밀 반죽에 팥소를 넣으니 제자리를 찾은 듯 더욱 빛난다. 팥칼국수도 놀라운데 팥찐빵까지 만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국에서 사 먹기만 했던 팥 듬뿍 들어있는 찐빵이 찜기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속에 반질반질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은 경이롭다. 내가 그 어려운 걸 매번 해낸다. 늘었으면 싶은 독일어는 요지부동인데 요리 실력만 날로 일취월장이다.



*찐빵 만들때 참고 동영상, 서정아의 건강밥상

https://www.youtube.com/watch?v=97VukFolV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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