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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May 29. 2021

시간을 되돌린다면 독일에 왔겠느냐고

어디에 사나 고민하는 사이, 5년이 훌쩍


일흔이 넘으신 헤어 쇼팽(Herr Chopin, 쇼팽은 성이고 남성을 높일 때 Herr를 붙인다)은 나의 첫 독일어 개인 선생님, 친해진 이후엔 도미닉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인으로 독일인과 결혼해서 독일에 사신지 30년이 넘으셨다. 나처럼 외국인이면서 독일어를 배우려는 사람에게 무료로 독일어를 가르치신다. 일주일에 하루 쇼팽의 집에서 수업을 하는데 2019년 12월엔 동네 카페에서 조식을 먹었다. 밥집이 아니라 빵집에서. 유럽의 성탄절은 12월 한 달이 들뜬 만큼 카페가 만석이다. 공간이 바뀌니 속에 있는 이야기도 스스럼없다. 심오하면서도 멈칫하게 만드는 질문,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유진, 만약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독일에 왔을 것 같아?"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음, 글쎄..... 어려운 질문이네요"


독일이 좋은 점을 많이 장착한 나라지만 엄마로 사는 입장에선 그리 만족스러운 곳은 아니다. 내가 체감하는 좋은 점은 자연 친화적인 환경으로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공기에 매번 감탄하고 저렴한 물가로 블루베리와 체리 그리고 석류를 양껏 먹는다는 것쯤 되려나. 나라가 국민을 지켜준다는 믿음은 어디서 생기는지 모르지만, 확실히 안전에 대한 불안함은 한국보다 줄었다. 물론 코로나 이후 신뢰를 잃었지만. 대학까지 교육비가 무료라는 것도 다행스럽고. 비싼 보험료를 내지만 그만큼 의료비 혜택도 폭넓다. 한국에선 사비를 들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면 독일은 높은 세금으로 대비한다.


난 쇼팽의 질문이 어려워서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좋은 점과 별로인 점 반반이라고 대답했다. 오누이가 좋은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학교생활(락다운으로 7학년 아이는 5개월째 온라인 수업을, 초등 졸업반 4학년 딸은 격주로 학교에 가다가 드디어 다음 주부터는 매일 간다)을 한다. 나 말고 다른 가족 구성원 만족도는 최상이라고 여기는 건, 음 내 생각이고 다들 각자의 고충은 있다. 이방인으로 오랫동안 독일에 산 쇼팽에게 되물었다.


"도니믹, 당신은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독일에 왔을 것 같아요?"


자신은 시간을 되돌린다면 프랑스에서 살았을 것 같단다. 모국이 무려 프랑스! 고향에서라면 자신에게 훨씬 직업적인 면에서 유리했을 거라면서. 하긴 외국인에게 독일어를 무료로 가르치는 일 말고 더 그럴듯한 일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독일인 아내를 어디서 만났냐니까 프랑스에서 만났단다. 그의 아내는 김나지움 독일어 선생이셨고 은퇴하셨다. 난 어떤 답을 하게 될까.


작년 7월 이사 후, 만나지 못했다


독일어 수업에서 독일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발견했다. 사랑(Liebe)-우정(Freundschaft)-가족(Familie)-직업(Beruf)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하고 이유를 말하는 거였다. 순위 정하기 쉽지 않은 중요한 항목들. 만약 내가 미혼이라 가족이 없다면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택했다. 직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떤 한 사람이 선택하고 몰입한 직업은 그 사람을 형성하고 대변하기도 하니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사는 건 행운이라고 여긴다. 도미닉은 다시 물었다.


"만약 돈이 많아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래도 일을 하겠다고 답했다. 그게 꼭 수입과 직결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일은 내 존재 의미와 자긍심을 높일 테니까. 엄마들의 성장을 돕는 일이 그렇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더 확장해서 적극적으로 했을 신나는 일. 독일이라서 하고 싶은 만큼 열정적으로 못 하는 게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같은 언택트 시대에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직업적 성취감이 꽤 중요한 기질의 사람인데 원하는 일을 마음껏 못할 뿐 아니라 독일어에 꾸역꾸역 많은 시간을 쏟는 게 가끔 슬프고 자주 괴롭다.


인생의 여러 선택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늘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나. 결혼 후 싱글의 자유로움은 늘 선망의 대상이다. 아이를 간절히 원해서 낳고도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 경력 단절을 감수하고 육아에 올인한 것도 마찬가지고. 독일에 사는 지금의 선택도 아쉬움이 생기겠지. 어떤 선택이든 백 퍼센트 완벽하게 만족하는 건 없지 않을까. 어디에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5년이 흘렀다. 그저 그 순간 깊이 고민해서 선택한 이상 아쉬움이 덜 남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선택을 되돌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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