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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Aug 09. 2019

결국 축구 트레이닝에 못 갔다

괜찮다고 아무리 해도 안 괜찮은 거겠지

보통은 하루의 일정이 핸드폰 캘린더에 기록되어있는데 목요일인 어젠 두 개의 일정을 깜박했다. 하나는 에밀리와 하는 한글 수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들의 축구 트레이닝이다. 점심 먹고 숲에서 산책하고 장도 보고 딸아이 새 학기 준비물도 사 올 계획이었다. 집을 나서면서 '아, 오늘이 목요일이구나. 맞다. 에밀리하고 수업이 있었지' 부리나케 와츠앱으로 문자를 보내 삼십 분 정도 늦춰도 되는지 물었다. 에밀리는 다행히 괜찮다고. 축구 트레이닝은 아직 등록을 못한 상태라 아이가 친구한테 수업 여부를 물어둔 상태였는데 이것도 확인한다는 걸 까먹었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쉬기도 해서 더.


독일은 축구 강국답게 어려서부터 남자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운동이 축구다. 축구 클럽 수도 엄청 많은데 그중 마음에 드는 클럽을 골라 가입하면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클럽 활동을 계속 이어하는 걸 보면 꽤 역사가 깊어 보인다. 아이한테도 여러 번 권했었다. 친구들이 대부분 축구를 하니 너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는 소신껏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고 친구들하고 놀 때 하는 축구 정도는 거뜬히 했다. 그러다가 친한 친구가 얼마 전에 권했단다. 자기네 클럽에 한 번 와서 경험해보고 마음에 들면 너도 같이 하는 게 어떻겠냐고. 난 그 친구 진짜 좋은 친구라고 멋지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마침 뭐라도 운동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권하던 중이었는데 아이가 관심 갖는 운동이 없었던 터라 나는 무조건 찬성. 게다가 친한 친구와 함께라니 운동하면서 놀다 와라 했는데 아이도 이제야 마음이 동했는지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첫날 경험해보고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운동도 많이 되고 현란한 스킬로 축구 잘하는 친구를 보니 멋지다면서 계속하겠단다. 그 재미있는 걸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며 나는 부추겼다. 일주일에 두 번(화, 목), 하루 한 시간 반 축구와 관련된 훈련을 받는데 비용은 6개월에 42유로라니 엄청 착하다. 


아이가 시작하고 한 달 정도 있다가 바로 방학이었다. 그전에 한주는 열감기로 못 가고 한주는 여행 가서 빠지고 그다음엔 날씨가 더워서 트레이닝이 취소되고 어쩌다 보니 6주가 그냥 지났다. 그러다 어제 트레이닝이 있는 날이라는 것을 늦게 연락이 왔었는데 그걸 놓친 거다. 나도 에밀리와 수업하는 중이라 또 까맣게 잊었다. 하필이면 그 시간에 핸드폰을 압수해서 친구의 와츠앱 답변을 놓쳤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저녁 6시가 다 되어 생각나서 핸디를 확인해보라니 이미 트레이닝이 시작된 지 10분이 지난 시간이다. 아이가 뿔났다. 엄마 때문에 트레이닝 늦었다면서 부리나케 체육복과 물을 챙긴다. 핸드폰만 달라고 했을 때 줬으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어떡하냐고 따진다. 자전거까지 꺼내 주면서 미안하다고 화내지 말라고 좀 늦으면 어떠냐고. 아이가 풀릴 기미가 없다.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이런 상황이 자기는 정말 싫단다. 늦는 거. 오랜만에 하는 트레이닝이라 기대하고 있었고 친구가 마침 꼭 만나자고 했는데 늦어서 어떡하냐면서. 솔직히 많이 늦지도 않았다. 겨우 십 분인데, 아들의 짜증에 엄마도 화난다. 엄마 닮아서 늦는 거 엄청 싫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별로다. 한 번쯤 늦을 수도 있는 거지. 어르고 달래서 이렇게 화낼 시간에 빨리 가라고 해서 겨우 보냈다.


이럴 때 하소연할 사람은 남편뿐이다. 이러저러해서 아들이 울면서 축구에 갔다. 남편은 무조건 내편이다. 에휴, 아직 애라면서. 핸드폰 압수해서 찔려하는 나한테 그러니 평소에 아들이 핸드폰을 어지간히 했어야지. 아들 잘못이라고 철이 없다고 당신 잘못 아니니까 속상해하지 말란다. 나간 지 오분도 안돼서 벨을 눌러서 보니 아들이다. 체육복을 갈아입고 갔어야 한다는 걸 가다가 알았나 보다. 아들은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감정은 악화되고 오랜만에 꼭 가고 싶었는데 못 가서 속상하다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런 상태라면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이게 그렇게 눈물을 흘릴 일이냐며 나도 덩달아 열낸다. 아이는 늦는 것도 싫은데 아예 가지 않는 것은 더 싫단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지. 친구한테 간다고 했는데 약속 못 지키는 건 더 싫다고. 결국은 울면서 화내다가 못 갔다. 괜찮다고 아무리 해도 안 괜찮은 거겠지. 늦는 거 약속 못 지키는 거 아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내가 싫어하는 것과 똑 닮았다. 나도 이제야 조금씩 관대 해지는 일에 열두 살 아이한테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냐고 몰아붙이는 일은 아무래도 반칙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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