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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Aug 23. 2019

발마시지 코스를 신청했다

마리 유정님  그리고 친구 덕분에


화요일 오후 세시 반이 혹은 네시 반, 친구와 산책하며 일상을 나누는 시간이다. 어쩌다 보니 정착된 일상이다. 긴 여름 방학이 끝나고 만난 2주 전쯤엔 각자의 여행 이야기 끝에 발마사지 코스를 배워볼까 한다고 툭 말해버렸다. 할까 말까 한다면 내게 무슨 도움이 될까, 고민하던 중이라 나도 모르게 나온 모양이다. 친구는 약간은 놀란 듯하다가 대뜸 그걸 배운 다음에 뭘 할 수 있는데? 묻는다. 글쎄, 나도 솔직히 잘 모른다. 발마사지를 알게 된 건 뮌헨에서 사는 브런치 작가를 통해서다. 그녀의 글에서 발마사지가 어찌나 매력적으로 보이던지. 그래서 바로 정보를 물었고 친절하게 브레멘 홈페이지뿐 아니라 뮌헨과의 가격 비교까지 여러 장의 사진을 캡처해서 메일로 보내주었다. 게다가 난 마사지받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가끔 받아보면 늘 감탄했다. 이런 세계도 있다는 게 신기해서. 아픈지도 모르던 부위가 더 아파지거나 노곤해지니까. 

 

미니 잡을 구하던 중이었는데 세 번의 퇴짜를 받은 상태라 의기소침해진 것도 있다.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독일어 강좌를 이어하던가 아니면 다른 재미있는 일을 찾는 거다. 독일어는 솔직히 필요성은 알지만 지금은 좀 쉬고 싶다. 독일어가 녹슬지 않게 쓰면서 좀 더 실용적인 뭔가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데 그때 딱 발마사지가 내 눈에 포착된 거다. 한마디로 독일어 실천 편 정도 되겠다. 의도적으로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난 혼자서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안에 안주할 사람이다. 그런데 여긴 독일이니까. 이곳에서 경험할 만한 일을 최대한 해볼 생각이다. 

 

하지만 나도 여전히 고민 중이라 발마사지와 관련된 정보를 친구가 알려달라길래 뮌헨의 브런치 작가가 알려준 정보를 보내줬다. 친구는 시간 될 때 알아보겠다고 했고 어김없이 산책 시간인 화요일에 만났다. 지난주엔 그 시간에 하필이면 우박이 내려서 친구 집에서 차를 마셨다. 친구가 알아본 정보를 찬찬히 내게 알려주기에 집도 안성맞춤이었다. 뜨거운 행운의 차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마시면서 친구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그녀와 마주하고 있으니 신기하고 고맙고 난 참 운이 많은 사람이란 걸 행운의 차를 마시며 들었다. 

 


친구는 내가 알려준 곳에 전화를 직접 해서 알아봤는데 발마사지 코스를 받은 후 할 수 있는 일이 두 가지란다. 하나는 내가 알고 있던 마사지 샵의 미용을 위한 발 마사지고, 다른 하나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발마사지란다. 내 상담 심리 석사 졸업증이 혹시 독일에서 받아들여진다면 병원 쪽에서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다. 이건 확실하지 않은 일이라 더 알아봐야 된다고. 나도 뭐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재미로 배우고 소규모로 실습이 진행된다니 그 덕에 나도 발마사지를 받고 받아본 대로 가족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마음은 비웠다. 일단은 이 과정을 할 수 있을 것인가도 고민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게 된 셈이다. 

 

과정 자체는 그렇게 긴 건 아니다. 9월 매주 월요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세 시간의 수업이고 5번 참석하면 된다. 브레멘까지 왔다 갔다까지 생각하면 최소 5시간 이상은 소요된다. 게다가 저녁 시간이다. 현재 주말 부부로 지내는 중이라 주중에 남편은 없다. 큰아이가 열두 살이니 동생 데리고 저녁 챙겨 먹고 씻고 잘 준비하면 어느 정도 가능할 것도 같다. 딸도 이젠 3학년이고. 그런데 문제는 9월 셋째 주 월요일에 큰 아이가 4박 5일간 학급 여행을 가는데 그 날이 딱 겹쳐서 난감했다. 도움을 받을 사람을 아무리 생각해도 늦은 저녁 시간에 딸을 맡길 곳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번에 해야 하나 과정을 다시 찾아봤는데 이번을 놓치면 내년으로 넘어간다. 내년은 2020년! 이런저런 이유들로 고민스러웠고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친구가 기꺼이 그날 자기가 재인이를 봐주겠면서 다이어리에 일정 체크를 한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고마워서 말문이 막혔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렇게 민폐(누군가에게 쉽게 아이를 맡기지 못하는 성격에)를 끼쳐도 될까. 수십 번을 고민했다. 그냥 내가 과정을 포기하면 만사 오케이다. 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무리해서까지 그걸 하나,부터 별 생각을 다하면서도 신청서는 작성했다. 

 

이번 주 화요일엔 같이 우체통에 신청서를 넣었다. 친구도 잘했다고 응원해줬고. 우린 둘 다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난 모두 너의 도움으로 가능한 일이다. 딸을 하루 저녁 맡아주겠다는 제안은 정말 고맙다. 내가 그날은 조금이라도 일찍 수업을 나와서 너무 늦지 않게 딸을 데려가겠다고. 대신 선물로 발마사지를 네게 해주겠노라고. 친구는 좋아한다. 자기 발로 연습하면 되겠다면서. 나에겐 네 딸을 봐줄 시간이 있고.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니 괜찮다고. 미안해하는 내 마음까지 헤아려주니 마음이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다. 게다가 오누이만 저녁 시간에 있게 될 때 자기 전화번호를 비상 연락처로 남겨놓으라는 둥. 그 시간에 주인 할아버지는 집에 계시냐는 둥. 나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들을 염려하고 챙기는 모습에 감동스러우면서도 그래, 이 친구가 이렇게 배려 깊은 사람이었지, 깊은 고마움에 마음이 환해진다.


Freie Heilpraktiker Schule Bremen

http://www. fhs-bremen.de         


https://brunch.co.kr/@mariandbook/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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