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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Feb 28. 2024

나의 첫번째 국제 이사

영하 1도의 인천공항에서 영상 21도 두바이공항으로

나는 엉덩이가 꽤 무거운 사람이다.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팀 이동이 잦은 광고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같은 본부에 있었다. 그것도 15년동안. 본부이름이 3번이 바뀌었지만, 나는 여고괴담에 나온 반을 떠나지 않는 귀신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만큼 나는 변화를 싫어했고, 익숙한 것들만 해오며 살아왔다. 그리고 꽤나 운이 좋게도 익숙한 것들만 잘 해내면서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국제+이사'


변화를 싫어하는 내가 정말 안 좋아하는 두 단어의 조합이다. 그리고 역시나, 두바이로의 국제 이사는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발령 한 달 전, 추운 11월.


한 달 반정도 걸리는 배로 짐을 보내야 하는 국제이삿날. 큰아이가 아침부터 열이 39도까지 오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6살이지만 엄살이 심하지 않은 아이였는데, 아프다며 엉엉 우는 아이를 보고 큰일이 났다 싶었다. 원인은 A형 독감.

전염성이 있으니 근처 친구, 친척집에도 갈 수 없었고, 집은 먼지구덩이라 들어갈 수도 없었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차에서 이불 꽁꽁 싸매고 아이를 토닥이며, 내 짐들이, 내 간장 고추장들이 어떻게 실리는지는 보지도 못하고 두바이로 우리의 살림을 떠나보내아했다.


그리고 남편이 먼저 두바이로 떠난 후, 빈집에서 빌린 가전들과 캠핑 도구들로 지내기를 한 달. 이제 당분간 못 갈 단골 미용실에 들러 파마만 하면 되겠다 싶던 때, 아이가 긴장 했는지 조금만 먹어도 다 토해냈다. 아무것도 못 먹고, 이온음료와 보리차로 이틀을 버텨낸 아이는 두바이에 가기 전 꼭 먹고파 했던 외할머니 치즈 김밥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살이 쪽 빠진 채로 두바이로 떠나야 했다. 나의 자라난 곱슬머리들과 함께.

그렇게 정신없이 어떻게 짐을 쌓는지도 모르고, "잘할 수 있어. 겁낼 것 없어"라는 시아버님의 말씀에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며, 4살, 6살 아이 둘 손 꼭 잡고 비행기에 올랐다. 왜 우냐는 아이들에게 이제 아빠 만나러 가서 신나서 우는 거라고 했다. 여전히 아픈 아이에게 비행기에서 햇반죽 외에는 아무것도 먹이지 못하고,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우리는 그렇게 10시간을 날아, 아이들 아빠가 있는 곳, 21도의 겨울 두바이에 도착했다.

공항에 가득한 수많은 중동인들 사이에서 누가봐도 한국 사람인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 이제서야 맘이 좀 놓였다. 일단 아이들 털조끼부터 벗겼다. 저녁인데도 땀이 얼굴에 송글송글 맺힌다. 두바이에 온 게 실감이 났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두바이 집에 도착하자 나는 모든 것이 익숙했던 한국으로, 나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남편이 고심해서 고른 예쁜 복층 테라스 아파트였지만, 한국에서 짐도 오지 않아, 먼저 두바이에 와있던 남편이 지인에게 구한 매트리스와 요, 그리고 전기장판만 덩그러니 있는 우리의 새로운 집을 마주한 첫째날밤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나이 마흔에 맞이한 새로운 변화가 두려웠다.


할 수만 있다면, 이것은 잠깐이면 지나갈 여행이고, 안녕을 고하며 시원하게 떠나고 싶었다. 나의 주특기인 잔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이 안보였다. 잠이 안 올것처럼 마음이 복잡했지만, 남편을 만나 긴장이 풀렸는지, 우습게도 이 불편한 매트리스와 얇은 요위에서 오랜만에 아주아주 깊은 잠을 잤다.

그리고 전날 저녁에 갈았던, 수도꼭지의 필터가 오전사이 바로 흙빛이 되는 것을 보며 실감이 났다.


'나, 사막 도시로 이사온 게 맞구나!'


두바이는 해외살이를 처음 시작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먼 거리만 빼면 난이도로는 '하' 정도되는 곳이라고 한다. 영어가 모든 곳에서 통하고, 외국인 비중이 80%가 넘어, 인종차별이 거의 없고,  외국인에게 매우 관대한 인터내셔널 도시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고 싶었다. 익숙했던 나의 집으로.

두바이에 오기 전 유튜브에서 두바이 관련 영상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영상 속 두바이는 중동이라기 보다는 미래도시 같았다. 광활한 사막 속 화려한 빌딩들과 분수 쇼, 그리고 인공섬까지, 미래의 도시가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하게 하는 곳 같았다.

하지만 영상에서보던 반짝반짝 두바이는 관광지의 일부였고, 삶으로 들어온 두바이는 흙빛 필터와 함께 온통 낯선 것들의 복합체였다. 새벽에 들리는 기도 소리부터 적응이 안 되었다.

몸은 한국에서 싸온 짐들을 풀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두바이와 내가 어울릴까?' ,'여기서 어떻게 아이들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친구는 사귈 수 있을까?','어디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 하고 끊임없는 질문들만 떠올랐다.


여기에 영어, 운전, 그리고 살림.

한국에서 미루고 미루었던 모든 것들을 해내야 하는 부담감에 갈증이 났다. 이제 익숙한 것만 잘 하고 살면 되겠다 싶었던 나의 40대에 만난 새로운 낯섦이었다. 요리조리 잘 피해다니던 나의 요행길이 이 두바이의 모랫바람에 길을 잃었다. 

나는 달력을 열고, 돌아갈 날까지의 날짜부터 세었다. 오늘부터 1459일.

그렇게 하루하루 오늘의 과제 수행을 한다는 마음으로 두바이의 일상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하지 않았던 '나는 엄마다.', '나는 할 수 있다.'를 되뇌었다. 대충대충 살던 내가 이런 날이 오다니.

이 또한 나는,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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