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데이나 Oct 15. 2024

아이는 자라난다

그곳이 사막일지라도.

두바이에도 감기가 극성이다.


마이코플라즈마라는 아주 독한 폐렴을 한국에서도 어린 친구들이 많이 걸린다는데, 이곳에서 우리도 피해 가지 못했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우리나라 옛말로는, 평균 온도 35도의 두바이의 가을 감기를 설명할 수 없다.

열이 계속 떨어지지 않는 둘째가 자는 동안,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요즘 부쩍 큰 느낌이었는데, 자는 모습은 여전히 아가 같아 본능적으로 뺨을 아이볼에 가져다 댔다.


어?


사라졌다. 모짜렐라 치즈 같던 우리 아가의 볼살이. 순간 흠칫 놀라 아이의 뺨을 만졌다. 늘 말랑했던 아이의 뒤꿈치가 단단해진 그날의 느낌처럼, 볼이 꽤 단단해졌다.



아이는 자라고 있었다.
이곳이 두바이든 한국이든.



한국에서야 유치원 1년 차의 나이이지만, 두바이 영국 국제학교에서는 유치원도 졸업하고 1학년이 된 다섯 살 둘째. 워낙 승부욕이 있는 아이라, 본인이 굉장히 큰 언니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하루가 다르게 훌쩍 커버렸다.

새로운 나라에서 나의 맘이 힘들다는 이유로 몸만 붙어있었지, 맘은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두바이의 시간 동안, 하얗고 동그란 볼살을 가진 우리 집 막내는 단단해진 볼살만큼 자라나고 있었다.

좀 더 예민하다고 생각한 큰 아이의 감정을 챙기느라, 무던하다고 생각한 둘째까지는 내 손이 닿지 못했다. 불현듯 그 빈 시간이 느껴져 미안함, 서운함, 아쉬움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가 돌 무렵 원인불명의 열이 심하게 나서, 응급실을 다녀오던 그날이 떠올랐다. 아기띠에 아기를 안고 오던 새벽녘의 시간에, 링거를 맞고 곤히 아기띠에서 잠든 딸을 보며, 워낙 순해서 손이 가지 않았던 아이라, 아픈 것도 소홀했던 내 탓 같고, 주사도 잘 견뎌낸 아이가 ' 많이 컸네.'하고 대견했던 그날의 그 느낌이, 두바이의 2층집 아이방에서 다시금 들었다.

아이들도 분명 말할 수 없는 힘듦이 두바이에서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영어 한마디도 못하던 둘째는, 이제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아랍어를 읽고 말하며, 영어 필기체로 수려하게 편지를 쓴다.  그동안 이 어린아이의 시간 속에도 많은 일이 있었겠지. 두바이에 와서 아이가 백일동안 울었던 일화는 우리 집에서도, 또 이 학교에 새로 와서 걱정이 많은 다른 엄마들 사이에서도 꽤 좋은 대화 소재가 되고 있다. 나야 길어야 15분 남짓 외국인들을 만나고,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퇴로가 있었지만, 짧으면 3시간, 길면 6시간 동안 학교 안에서 얼마나 떨렸을까.


아직도 키울 날이 망망대해인데, 마치 다 키운 것처럼 대견함과 안쓰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작은 볼살 하나 때문에.


해외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는 무언가 거창한 일인 것처럼 마음을 조리기도 하고, 또 으스대기도 하고 굉장히 다른 육아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래야 이 타지생활의 외로움이 위안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육아는 두바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내가 엄마임에는 변함이 없고, 늘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지만, 또 아이가 빨리 크는 건 싫은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놀라서 남편에게 아이의 볼살이 달라졌다고 하는 나에게, 남편은 여전히 볼살이 많다며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 그건 엄마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갓 태어나 분만실에서 닿은 그 아이의 살 느낌부터, 졸릴때마다 품에 안겨 볼을 비벼대던 그 순간순간의 느낌을 엄마는 잊지 못한다.

이제 더 단단해질 날 뿐이겠지. 늘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를 세며, 두바이의 시간은 늘 느리다고 생각했다. 느린 시간의 장점이 있었네. 두바이의 느린 시간만큼 조금만 천천히 크자, 나의 꼬맹이.

이전 17화 나의 작은 지구마을, 두바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