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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Nov 13. 2019

다섯살, 겨울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어


{내 앞의 생}


지인의 돌잔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근처 지하철 역에 내려달라는 부탁으로 처음 만난이가 우리 차를 탔다. 그녀는 84년에 로마에 와서 20년을 살고 한국에 돌아갔노라 했다. 2000년을 대희년이라고 불렀다.. 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20년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더 이탈리아스러웠을 거다. 지금이야 느리다 느리다 해도 인터넷은 되지 않는가


_너무 힘들더라고, 다시 적응하는 게. 그것도 내 나라에서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게 좀.... 그랬어. 그래서 글을 썼는데 그게 기억하고 남기고 그래야겠어서가 아니라 놓아버리려고. 


내가 한국에서 적응하려면 로마를 놓아줘야 하더라고. 


_저도 그래서 글을 쓴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든데 해외에서 산다는 것도 쉽지는 않고, 힘들어서 뭐라도 해야 하니까 썼어요. 그런데 쓰고 나면 그게 빠져나가더라고요. 뭐, 빠져나간 자리에 다음 힘듦이 들어오지만, 그러면 또 쓰고.
_내가 한국 가니까 알겠더라고. 여기 참 좋아. 좋은 곳이야. 이스라엘, 이집트도 가봤어. 그런데 거긴 종교적으로 민족적으로 분쟁이 있는 나라이다 보니 다들 좀 화가 있어. 여긴 그런 게 없지. 그래서인지 화가 없는 사람들이야. 밝아. 긍정적이고. 뭐, 우리가 여기에서 힘든 게 왜 없겠냐만 서도 그건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그렇지 그래 버리면 되잖아.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가 없는 곳이야. 한국에서의 진상? 갑질? 그런 거 하면 당장 쫓겨나가지. 안 그래? 난 여기서 철학 신학공부를 했어. 우리 땐 가이드가 다 아르바이트였는데, 설명하는 게 죄다 대학에서 공부한 거잖아. 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신은 다 내가 먹고살 길을 마련해 놓으셨구나. 시간이 지나 다시 와보니 가이드가 직업이 되어있었어. 그쪽은 어떻게 왔어? 아~ 가이드하러? 거봐 가이드를 하러 오는 사람도 생기고, 난 지금 한국에서 교수를 해. 여름엔 딸 보러 로마에 와서 가이드도 하곤 해. 한국에선 교수가 가이드를 한다고 왜 그러냐 그러지. 그러면 말해. 로마의 가이드는 다들 엄청 공부하고 심지어 전공한 사람들도 한다. 그곳의 가이드야말로 가이드, 그 단어의 뜻 그대로의 가이드라고.

로마에서의 삶이 깊고 길어질수록 우리 앞을 사셨던 분들을 존경하게 된다. 매년 새해에는 헤어짐과 만남이 공존한다. 우린 머묾을 선택했으니 헤어짐에 의연해져야 한다. 그리고 떠남이든 머묾이든 어디에서나 놓아야지만 진짜 정착이 가능해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놓아버린 자리엔 어느새 무언가가 채워진다는 거다. 그렇게 다들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반짝반짝}


_엄마, A는 정말 축구를 잘해!
_A의 형이 축구선수인 거 알지?(A의 형은 중학생 축구팀에 속해있다) 그래서 A는 매일 축구를 한데. 집에서도 학교 안 가는 날에도, 이안이는 학교에서 축구하는 날만 하니까, A는 매일매일 하니까 잘하는 걸걸? (난 아이가 부러워서 그런 말을 하나 보다 싶어서 내 딴엔 형이 있어 그런 거야 부러워할 것 없어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음, 내 생각에는 A가 축구를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 
좋아하면 반짝반짝하거든.



{나쁘면 학생이 되어야 합니다}


_엄마, 엄마는 왜 엄마들 중에 제일 작아? (키가 작다는 뜻인 듯) 우리 학교에는 키가 제일 큰 남자가 있는 거 알아? 플라비오!! (체육선생님 키가 한 2미터는 되어 보임) 그런데 키는 제일 큰데 마음은 제일 작아!! (의문의 1패 ㅋ) 왜 마음이 작냐고? 다 안된데!! 다 하면 안 된데!! 그런데 선생님은 안 지키고!! 그러면 누가 제일 나쁜 거겠어? 어? 어? 누가 제일 나쁜 거야? 선생님이지?! 


나쁘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 
그러면 학생이 돼야지!



{행복}


_이안, 모두가 행복할 수 있어?
_아니.
_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는 거야?


그럴 순 없어.


슬픈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줘야 해. 죽은 사람이 있으면 눈물을 흘려야 해.
_무슨 말이야? 기분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슬픈 사람도 있다는 거야? 그러면 행복한 사람이 슬픈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줘야 해? 울어주고? 그래서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는 거야?
_응, 그리고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가 안 좋은 일이 생겨. 그러면 화도 나고 슬프잖아. 계속 기분이 좋지는 않아.



{ 싸운 날 }


유치원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날 안으며 아이가 말했다.


_오늘 엄마와 싸우고 나서 내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았어.


순간, 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며 아이는 마치 날 달래는 듯 말했다.   

걱정 마. 
스티커로 붙이면 돼.



{ 착한 일 }


_엄마! 엄마! 나 산타가 이번 나탈레(크리스마스)에 선물 진짜 많이 줄 것 같아. 나 정말 착한 일을 했거든!!!!

_그래? 어떤 착한 일을 했는데?


초콜릿 밖에 거 다 먹고,                   
안에 있는 콩은 이도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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