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이윤학)
[시 쓰는 여름] 마흔다섯 번째 시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이윤학)
오른손 검지 손톱 밑 살점이 조금 뜯겼다.
손톱깎이가 살점을 물어뜯은 자리
분홍 피가 스며들었다.
처음엔 찔끔하고
조금 있으니 뜨끔거렸다.
한참 동안,
욱신거렸다.
누군가 뒤늦게 떠난 모양이었다.
벌써 떠난 줄 알았던 누군가
뜯긴 살점을 통해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아주 작은 위성 안테나가 생긴 모양이었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
출처:<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문학과지성사, 2008
"엄마, 오늘 이상하게 여기가 너무 아팠어."
아이가 손을 불쑥 내밀며 엄지와 중지를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손톱을 너무 바짝 깎아서 손톱 밑이 아팠던 모양입니다. 시간이 지나는 것 외에는 약이 없는 지라, 다음에는 조금 여유 있게 손톱을 깎자고 하고는 밴드를 하나씩 붙여줬어요. 새 손톱이 자랄 때까지 아이는 아림을 감수해야겠지요.
태어나서 제 손톱 외에 다른 이의 손톱을 깎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주 당연한 일이지요. 엄마가 되면서 타인의 손톱을 처음으로 깎아봤어요. 첫째 아이의 손톱을 처음 깎던 날, 그날의 긴장감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할 만큼,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너무도 작고 여린 아이의 손톱을 깎으며 혹여라도 아이가 다칠까 봐, 바들바들 떨었던 제 손길을 아이는 기억할까요? 결코 기억하지 못하겠지요. 저도 엄마가 제 손톱을 깎아준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으니까요.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이윤학)'는 손톱을 깎다 생긴 상처에서 출발한 시입니다. 화자는 손톱을 깎다가 손톱 밑에 상처를 내고 맙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선명한지, '처음엔 찔끔하고/조금 있으니 뜨끔거렸다.//한참 동안,/욱신거렸다.'라고 해요.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지요. 이후 화자는 손톱의 아림과 쓰림을 '누군가의 떠남', 즉 마음의 상처와 연결 짓습니다. 이제 일상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던 이가, 불현듯 아려와요. 뜯긴 살점으로 인한 육체적 아픔이, 이별로 인한 정신적 아픔으로 치환됩니다. 그 상처는 '아주 작은 위성 안테나'가 되어 그를 떠올리게 하고, 그리워하게 해요.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 떠난 '너'의 실체는 이제 어디에도 없지만, '너'의 기억은 화자의 내부에 언제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오래전에 이별한 사랑을 떠올리기보다는, 먼 훗날의 어느 날을 상상했어요. 먼 훗날, 손톱을 깎다가 너무 바짝 깎아버린 어느 날,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던 주말 밤을 떠올리지 않을까, 하고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고 지극히 사소한 일상의 한 장면이지만, 머지않은 어느 날 아이들이 스스로 손톱을 깎게 되면 더 이상은 일상이 아닌 날이 되겠지요. 한동안은 편할 것도 같아요. "얘들아, 손톱 깎아." 한 마디로 저의 사소한 노동이 일부 줄어들 테니까요.
시간이 좀 더 오래 지나면 완전히 잊어버리겠지요. 주말 밤마다 아이들의 작은 손을 잡고 똑똑똑 경쾌한 소리를 내며 손톱과 발톱을 깎아준 기억을요. 그러다 제 손톱을 깎다가, '아, 그때 아이들의 손톱을 깎아주던 때가 참 좋았지. 그때 우리 아이들 참 예뻤지. 너무도 사랑스러웠지.' 불현듯 그리워지겠지요. 언제나 제 안에 살아 있을 아이들의 어린 시절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나겠지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는' 기억들이요.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자꾸 울컥합니다. 여전히 아이들의 손톱을 깎아줄 날이 많이도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그리움이 가득 차오르는 이유가 뭘까요. 아마 방금 아이가 잠들기 전에 함께 나눈 대화 때문인 것 같아요.
"엄마, 내가 스물일곱 살이 되면 엄마는 몇 살이야?"
"음, 이십 년 후니까 엄마는 육십 살?"
"그럼 서른일곱 살이 되면?"
"칠십 살?"
"그럼 엄마 할머니 돼?"
"그렇겠지? 누구나 나이는 먹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지."
"그럼 우리가 헤어질 수도 있어? 엄마도 정아 할아버지처럼 하늘나라 갈 수도 있어?"
"있지. 당연히.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떠나."
"으앙. 엄마. 안돼. 너무 슬프잖아."
"그래, 헤어지는 건 슬픈 일이지.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더 많이 사랑해야 돼."
아이는 잠깐 동안 말이 없더니, 이내 새근거리며 잠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졸린 걸 어떻게 참으며 대화를 했을까 싶을 만큼, 거짓말처럼 금세 잠이 들었어요. 그렇게 잠든 아이 곁에서 이 글을 써서 이토록 마음이 왈칵 쏟아지나 봅니다.
아직 아이의 손톱을 깎아줄 날이 많이 남았음에 문득 감사한 날입니다. 만만치 않은 두 아이 육아지만, 지나고 보면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일 것을 알기에,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안아줘야겠다 다짐하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