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나에게서 태어나는 문장은.

문장들(임선기)

by 진아

[시 쓰는 여름] 스물다섯 번째 시


문장들(임선기)


어떤 문장에는

걸려 넘어지지 말라고

등이 켜져 있다


어떤 문장은

작은 다리 같고

다리 아래를 지나는 사공의

노래가 들린다


어떤 문장은 풀밭을 지나는 외로움 같다


어떤 문장은

말하기 전에

은방울꽃을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야 했다.


출처:<피아노로 가는 눈밭>, 창비, 2021




하루에도 수백 개의 문장을 만납니다. 수백 개라니, 너무 많게 느껴지시나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저로서는 수백 개가 아니라, 수천 개의 문장을 만나는 날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내뱉는 말과 흡수하는 말, 읽는 글과 쓰는 글은 모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냐에 따라 문장의 결과 빛은 달라집니다. 어떤 문장은 누군가를 넘어뜨리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기도 해요. 눈물겹기도 하지만, 눈물 멎게도 합니다. 무색무취인 문장도 있고, 오감을 자극하는 문장도 있어요.


글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 문장에 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에게서 태어난 문장들이 적어도 누군가의 아픔이 되지는 않았으면, 누군가의 상처를 헤집지는 않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애쓰고 바라는 대로 잘 흘러가는 날도 있지만, 때로는 바람이 무색해지는 날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울게 하고, 누군가를 아리게 한 날이면 길고 긴 밤을 후회와 반성으로 가득 채웁니다. 새롭게 태어날 나의 문장들을 미리 어루만지기도 합니다. 따뜻하고 둥글게 태어나 누군가의 마음에 잘 닿기를 다시금 기도하면서요.


하루 동안 다 기억할 수도 없는 문장들을 뱉은 오늘, 종일 저에게서 태어난 문장들을 애써 떠올려 봅니다. 상대를 찌르는 날카로운 문장은 없었는지, 누군가를 외롭게 만드는 쓸쓸한 문장은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혹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은 있었을지,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한 문장은 있었을지 생각해 봐요. 떠오르는 몇몇의 문장에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래서는 안 됐었는데,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 후회의 밤이 될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이 드네요.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늦은 밤입니다. 무사히 일주일을 보내고, 잠시 쉬어가는 밤의 시작입니다. 이미 지나간 문장들에 매어둔 마음이 있으시다면,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돌이킬 수 없는 문장은 지난 시간으로 넘기시고, 새롭게 태어날 문장에 온기와 사랑을 가득 불어넣는 주말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좋은 시로 다시 만나 뵙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서리를 매만져 둥글게 둥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