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를 매만져 둥글게 둥글게

넉넉한 마음 (김재진)

by 진아

[시 쓰는 여름] 스물네 번째 시



넉넉한 마음(김재진)


고궁의 처마 끝을 싸고도는

편안한 곡선 하나 가지고 싶다.

뾰족한 생각들 하나씩 내려놓고

마침내 닳고 닳아 모서리가 없어진

냇가의 돌멩이처럼 둥글고 싶다.

지나온 길 문득 돌아보게 되는 순간

부끄러움으로 구겨지지 않는

정직한 주름살 몇 개 가지고 싶다.

삶이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속이며 살아왔던

어리석었던 날들 다 용서하며

날카로운 빗금으로 부딪히는 너를

달래고 어루만져 주고 싶다.


출처:<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2015



나이를 먹어갈수록 꼿꼿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드럽게 휘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휘어진다는 것은 줏대 없이 휘청거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에 더 가까워요. 상대의 의견에 맞추느라 나의 의견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다른 나의 의견을 부드럽게 전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조율할 줄도 알고, 타협할 줄도 알며, 때로는 과감하게 내 의견을 철회할 줄도 아는 용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 또한 유연합니다. 과하게 자만하지 않으며, 실수를 자책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상처 입히지 않고, 사랑할 줄 압니다.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모난 구석 없이 유연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쉽지 않았어요. 욕심이 많았고, 생각이 많았거든요. 그러면서도 미움받을 용기는 없어서 속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두루두루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동그라미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속내는 그렇지 않았어요. 뾰족한 모서리를 안으로 세워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척하면서 스스로에게는 가혹할 만큼 모난 사람이었어요. 동그라미를 꿈꿨지만 세모에 가까웠던 저는 저를 사랑하지 못한 채, 서른을 맞이했습니다.


삼십 대 중반을 지나 서른보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어요.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이 가장 큰 계기였어요. 아이를 키우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처음으로 ‘나’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안으로 모서리를 세우며 살아왔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어요. 어제의 시 '겹쳐서'에 대한 단상에서도 글쓰기 이야기를 썼었는데요. 저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조금씩 다듬어졌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진짜 글쓰기 예찬론자? 중독자? 뭐 그런 것 같네요. 네, 사실 맞아요..^^)


“무슨 에너지로 그렇게 살 수 있어요?”


학교 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 글을 쓰고 가끔은 책도 쓰는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글쓰기 초반에는 딱히 답할 말이 없었는데요, 작년부터인가. 이제는 같은 질문을 받으면 고민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일단 재밌어요. 재밌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나거든요. 그리고, 저는 이런 제가 좋아요!”


이제는 저를 좋아한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해요.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꽤나 둥글어진 제가 좋습니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지만, 스스로를 공격하는 모서리는 제법 둥글어졌거든요. 물론 저를 사랑할 줄 알게 되면서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무조건 상대에게 맞춰주고 기분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제가 꿈꾸던 유연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삶이 우리는 속이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삶을 속이며 살아왔던 어리석은 날들’과 서서히 결별하는 중입니다. 나와 너를 달래고 어루만지며 ‘냇가의 돌멩이’ 같은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습니다. 아니, 익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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