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함민복)
[시쓰는 가을] 열한 번째 시
달(함민복)
보름달 보면 맘 금세 둥그러지고
그믐달에 상담하면 움푹 비워진다
달은
마음이 숫돌
모난 맘
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
달
그림자 내가 만난
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
출처:<눈물을 짜르는 눈꺼풀처럼>, 창비, 2013
곧 추석 연휴입니다. 추석은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하는데요. 한가위는 크다는 의미의 우리말 ’한‘과 가운데라는 의미의 ’가위‘가 합쳐진 말로, 음력 8월의 가운데 있는 가장 큰 날을 의미합니다. 한가위 인사말로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풍성한 가을의 한가운데인 한가위처럼 덥지도 춥지도 않아 곡식이 잘 자라고 결실을 맺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해요.
추석, 하면 ‘보름달’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실제로 추석은 정월대보름과 더불어 일 년 중 가장 밝고 큰 달이 뜬다고 합니다. 저도 추석, 하면 반사적으로 ‘달’이 떠올라, 오늘의 시로 ‘달(함민복)‘을 골라봤어요.
‘달(함민복)’은 비워지고 차오르는 달의 속성을 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시입니다. 보름달을 보면 마음도 덩달아 둥그러지고, 그믐달에 마음을 털어놓으면 마음의 무게가 움푹 비워집니다. 달은 숫돌이 되어 우리의 ‘모난 맘’을 ‘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줘요. ‘환하고 서럽게‘ 참 어울리지 않는 두 형용사가 함께 쓰였는데요. 달은 좋은 내 마음은 환하게 밝혀주고, 모난 내 마음은 다듬어 조금 서럽게도 합니다. 마지막 연에 있는 ’그림자‘는 누구의 그림자일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봤어요. 먼저 앞 연에 있는 ’달‘과 이어지는 그림자라면 ’달 그림자‘입니다. ’달빛‘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요? 그렇게 보면 달빛은 그 아래 선 ‘나’를 비추는 ’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입니다. ’그림자‘가 ’나‘의 그림자라면, 달빛에 비친 내 그림자, 즉 내 모습이에요. 달빛에 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나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참 서정적인 거울이지요. 이랬거나 저랬거나, 달빛 아래에서 모난 마음이 다듬어지고 있는 ‘나’의 모습은 서정적이기 그지없어요.
해를 바라보는 일은 많지 않지만, 달은 바라보는 일은 잦습니다. 달은 그 자체로도 서정적이어서, 잠깐만 바라보고 있어도 여러 생각이 듭니다. ‘오늘 하루 잘 살았나’ 돌아보기도 하고, ‘그 사람은 잘 있을까’ 그리워하기도 해요. ‘아까는 그러지 말 걸’ 후회하기도 하고 ‘그때 그 선택은 최선이었어’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달이, 비워지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오르는 달이 위로가 되기도 해요. ‘아, 무사히 또 한 달이 지나 보름달을 다시 만났구나!‘
달이 모습을 바꿔 보이는 것은 과학적으로 보자면 비워지고 채워지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과학적 현상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달의 모습 변화에 이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낭만과 서정을 느낍니다. 저도 과학보다는 문학에 가까운 사람이라 달의 공전보다는 달의 서정에 마음을 뺏깁니다.
달의 모습은 변함없는데, 태양의 영향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달의 모습이 달라지는 데에 마음이 일렁입니다. 달의 본모습은 언제나 둥그런 모습입니다. 다만 묵묵히 제 할 일(공전)을 하다 보니 태양빛을 전면에 받아 동그랗게 보이는 날도 있고, 극히 일부만 받아 얇은 눈썹 모양처럼 보이는 날도 있어요. 우리의 삶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 몫의 일을 묵묵히 해내다 보면, 태양빛 가득 머금은 보름달처럼 둥글고 환한 때가 오지 않을까요. 때론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 있어도, 태양빛을 받지 못해 그믐달처럼 모난 때가 오기도 할 테지만요. 그러니 왜 지금의 나는 보름달이 되지 못하고 그믐달일까, 원망하는 대신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여기는 편을 선택해 봅니다.
자연의 흐름과 삶의 흐름은 같을 수 없어서, 누군가는 내내 보름달처럼 밝고 환하게 사는 것 같고, 나는 늘 그믐달처럼 내 전부를 내보이지 못하며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믿고 싶어요. 저마다의 공전 주기가 다를 뿐이라고요. 속도가 달라서 그렇지, 우리 모두 태양빛 가득 머금은, 환한 보름달이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믿어봅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추석 때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어본 기억이 없는데요. 아무래도 이번 추석에는 소원을 빌어봐야겠습니다.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더불어,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나날이 보름달처럼 환한 날들이시기를 빌어야겠어요.
*시쓰는 가을은 내일(9.26.)부터 개천철(10.3)까지 연재를 쉽니다. 집에 있는 두 꼬맹이와 함께 친정도 다녀오고 시댁도 다녀오며 풍성한 한가위 보내고 오겠습니다. 모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