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생(손택수)
[2024 시 쓰는 가을] 다섯 번째 시
완전한 생(손택수)
완전히 행복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행복의 중심에 있을 때조차 어딘가는 조금씩 불편했다
완전히 불행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불행의 중심에 있을 때조차 대책 없는 낙관이 있었으니
완전히 진실했던 적은 있었나
진실의 중심에 있을 때조차 얼마간은 나를 의심하는 병을 내려놓질 못했다
완전히 진실하지 않았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위선의 중심에 있을 때조차 몸은 알고 수면장애에 시달렸으니
완전히 사랑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결혼행진곡 속에 있을 때도 나는 어딘가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불을 끄지 않고 기다리는 아파트 벼랑 위의 불빛이 나의 등대였으니
죽을 때는 완전히 죽을 수 있다면, 깨끗한 재가 되어 타 오를 수 있다면
그러나 눈을 감는 그 심각한 순간에도 의식의 한쪽은 깨어
창밖으로 스치는 구름의 말을 받아쓸 수 있다면
따라오지 않고 버티는 머리카락과 손톱과 장기들을 기다려줄 수 있다면
나란 늘 엇결 같은 것인가
엇결의 불일치로 결가부좌를 튼 것이 나인가
조금씩은 늘 허전하고, 부끄럽고, 불만스러웠으나
조금씩은 어긋나 있는 생을 자전축처럼 붙들고 회전하면서
출처:<어떤 슬픔은 함께 할 수 없다>
11월이 왔네요. 오지 않을 것 같던 연말이 기어이 또 오고야 말았습니다. 10월까지만 해도 그리 조급하지 않았는데, 11월이 오니 괜히 이런저런 조급함이 몰려듭니다. 올 한 해를 잘 보내줄 생각을 하면서, 지나간 시간을 자꾸 되돌아보게 되네요. 여러분의 11월은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오늘의 시 ‘완전한 생(손택수)‘은 행복과 진실, 사랑 등 우리가 완전하기를 꿈꾸는 대상들에 대해 성찰하는 시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행복하고 싶고, 완전히 진실하고 싶고, 완전히 사랑하고 싶지요. 하지만 생이 어디 그런가요. 사실은 완전히 행복한 순간은, 완전히 진실한 순간은, 완전히 사랑하는 순간은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불행하냐, 완전히 거짓이냐, 완전히 사랑하지 않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닙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는 뜻이에요. 우리의 삶이 완전할 수 있을까요. 완전하다의 정의를 곱씹을수록, 완전한 삶은 없다는 생각에 확신이 듭니다.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진 삶, 모자라거나 흠이 전혀 없는 삶. 그런 삶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 내면에 어떠한 번민도 없이, 지극하게 완전함을 누리는 삶이.
이 시의 화자인 ‘나‘는 어느 순간에도 완전하지 않던 스스로에게 ’엇결 같은 사람, 엇결의 불일치로 결가부좌를 튼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려 줍니다. 엇결은 나무의 비꼬이거나 엇나간 결을 의미하고, 결가부좌는 두 다리를 엇갈리게 교차해서 앉는 자세를 말하지요. 결국 자신의 삶은 행복과 불행, 진실과 거짓, 사랑과 배신 등이 뒤엉킨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런 자신이 삶이 미웠을까요. ‘조금씩은 늘 허전하고, 부끄럽고, 불만스러웠으나/조금씩은 어긋나 있는 생을 자전축처럼 붙들고 회전하면서‘라는 마지막 시행을 볼 때,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허전하고 부끄럽고 불만스러웠더라도, 완전하지 않은 자신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오히려 그 삶을 자전축 삼아 매일을 살아냈으니까요.
잠깐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완벽주의자입니다. 매사에 실수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해요. 완벽하고 완전하게, 제 몫을 해내기 위해 늘 고군분투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정말 완벽하고 완전했을까요. 그랬다면 차라리 좋았겠지요.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완전하길 간절히 꿈꿀수록 저는 자주 넘어지고 실수하고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삶에서 ’완벽‘을, ’완전‘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참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싶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인 내가 감히, 내 삶을 완전으로 채우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완전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엇결의 나’를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로 한 화자처럼, 저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11월이 왔다고,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돌아보며 올 한 해 또 완전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던 저에게 ‘완전한 생(손택수)’라는 시는 완벽한 처방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께는 이 시가 어떻게 읽히실지 궁금합니다. 혹, 저와 같이 완벽주의를 꿈꾸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시를 읽는 동안만큼은 완전하지 못했던 스스로와 화해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날이 많이 차가워졌어요.
완전을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안녕한 날들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