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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un 15. 2022

세월이 야속해에~

나는 어려서부터 기억력 하나는 끝내줬었다.

눈썰미가 좋아 그런지 한번 본 것도 머릿속에 잘 담을 수 있었고, 글자를 봐도 숫자를 봐도 상당히 오래 잘 기억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할 수 있었다'라는 과거형의 등장은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이것이 내가 한때 소유했던 대단한 '능력'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인생 통틀어 정말 한정적인 기간 동안만 소유할 수 있었던 대단한 능력 말이다.


어릴 땐 그 대단한 능력 때문에 사실상 나의 의견을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단단한 '고집'도 있었다. 왜냐하면, 나의 기억은 너무도 정확하기 때문에 누군가 그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한다면(보통은 우리 오빠였다), 그걸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쪼그만 게 고집이 대단하단 얘기를 들을 수밖에...


사실 이제는 뭔가 되어 있어야 할 일이 안되어 있을 때 우선적으로 나 스스로를 의심해본다. 나는 분명히 했다고 생각는데, 내가 제때 말을 안 해줬나? 혹시 내가 깜빡했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따져 물을 수가 없게 됐다. 슬프게도 퇴사 직전 회사에서 종종 경험하던 상황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남의 눈에 티보다 내 눈의 들보를 먼저 살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바람직한 현상이기도 하다.


이놈의 정신줄...!!


우리는 이 모든 현상을 '정신줄'과 연결 짓는다. 뭔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은 늘 똑같다.

'나 정신 나갔나 봐...'

그다지 나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정신만큼은 어찌나 사교적인지 한번 가출을 하면 웬만해선 잘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그렇다 보니 내 손이 한 일을 머리가 잘 모르는 일은 일상 다반사이다. 이들은 웬만해선 협업을 안 한다. 예를 들어 생각 없이(즉, 머리가 모르게) 내 손이 내려놓은 차 열쇠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며,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고도 찾는 일은 애교일 뿐만 아니라, 찾는 물건을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그 어디가 어디인지는 절대 모른다. 그래 놓고 물건들에 발이 달려 돌아다니는 게 분명하다는 말도 안 되는 푸념을 늘어놓을 뿐이다.


세월을 먹어가며 정신줄 붙들고 있는 게 어쩜 이리도 힘겨운 일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디지털 디바이스와 한 몸이 되어 사는 요즘이다 보니, '디지털 치매'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우리는 사실상 정신줄을 꼭 붙들고 내 머리를 굴리는 일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니 갈수록 태산이다. 기계도 안 쓰면 녹슬지 않던가.


스마트폰은 정말 여러 가지로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지만, 내 경우에는 단연코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이라 한다면 '리마인더'와 '알람'이다. 세상에.. 기계가 쉴 새 없이 상기시켜 주지 않으면 반드시 잊어버리고 마는 나란 사람.. 하춘화 선생님이 왜 그리 세월이 야속하다 외치셨는지 이제 너무 알겠다. 정말 이러다 디지털을 떼 버린 치매가 오는 건 아닌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다.


사실 어찌 보면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해야 하는 이 시대 우리 내들에게 있어 정신줄과 행동의 불협화음이란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간단히 컴퓨터처럼 업그레이드를 통해 시스템 개선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도 있다. 이유불문 세월에 따라 그저 다운 그레이드만 꾸준히 되는 몸뚱이 시스템 속에 살고 있으니, 좀 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여유를 생활 속에서 꼭 찾아야겠다 다짐해본다. 정신이 가출하지 않고 매일 제시간에 집에 돌아와 쉴 수 있도록.....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멘털(정신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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