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식구가 셋이다, 사람 둘에 개 하나. 엄마 아빠에 자식 둘로 이루어진 "단란한 4인 가정"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 같지만, 꼭 사람만 가족으로 쳐주란 법 없다고 하면 어쩌면 우리도 곧 네 식구가 될 수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 상당히 훈훈하고 마음 불편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 새로운 식구가 누군가 하니, "경주마"다. 읽던 사람 눈살이 확 찡그려질 수도 있겠다.
특별히 좋아 미치겠는 것도, 싫어 죽겠는 것도 없이 그저 묵묵히 살아오던 남편이 어느 날 경주마에 빠졌다. 경주마가 그렇게나 멋지단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뛴단다. 이해는 한다. 동물은 모름지기 토실토실해야 한다고 말하는 나조차도 늘씬한 경주마들의 자태를 보고 있으면 참 기가 막힌다. 그런데 단순한 팬을 넘어 직접 말을 들이겠다고 하니 머리가 지끈거려도 보통 지끈거리는 게 아니다. 마주가 되네 마네, 경주마를 들이네 마네, 나중 일은 어쩔 거네, 같이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 주제로 대화에 대화를 거듭하며 시간이 흘렀다.
어제 통보를 받았다. 개인마주 심사에 통과되었다고 한다. 남편이 묻는다, 어떤 마주의 배우자가 되고 싶냐고.
고민스럽다. 일단 나는 경마를 즐기지 않고 쉬이 좋아할 수 없게 생겨먹은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마를 욕하고, 싫어하고, 심지어 그런 "나쁜" 것은 없어져야 한다고까지 하는데, 그 모든 질타를 한 몸에 받는 자리로 굳이 기어 들어가게 된다면 뭘 어째야 하는 걸까.
우리 모두는 어떤 집단을 싸잡아 욕하는 것을 참 잘하고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는 안다, 그중에 분명 안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걸. 나와 내 남편이 바로 그런 예외가 되길 바란다. 사람들은 손가락질한다. "마주들 말야, 말을 무슨 자기 장난감 취급하고 못 뛰게 되면 버려버리고 죽여버리고. 아니, 멀쩡한 애 다리도 부러뜨린다며?" 맞다, 어떤 마주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 그런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모든 경주마 마주가 다 잔인한 냉혈한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꽤 의미 있을 것 같다.
어떤 마주는 순수하게 경주마를 사랑하고, 그 모습을 보며 삶의 기쁨을 얻기에 직접 자신의 말로 들이기까지 해서 아끼고 키워줄 수도 있다. 그런 남편의 마음을 존중한다. 그 정도 존중과 신의를 얻기에 충분한 사람이다.
두 사람의 조합이 희한해서 아마 마주를 하면서 바람 잘 날 없을 거다. 당세마(1살 미만의 망아지)는 데려올 예정이 없다. 1세마도 좀 자신이 없고 2세마였으면 좋겠다. 그 말은 지금쯤 우리의 새로운 가족이 이미 어딘가에 태어나서 뛰놀고 있다는 뜻이다. 제주도에서 바람을 슝슝 가르고 있든지, 켄터키에서 블루그래스를 얌냠 먹고 있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