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남녀 Jun 20. 2024

수영하는 경주마를 보며

馬主授業: 경주마 델피니



우리 경주마 피니는 지금 다리가 몸에 비해 덜 성숙되어 힘이 약하고, 강도 높은 훈련이 컨디션 저하를 가져오는 상황이다. 그런 피니를 위해 시도해 본 새로운 훈련은 바로 수영. 수영의 운동 효과는 사람의 경우와 비슷하다. 다리 관절에 직접적인 무리는 덜 주면서도 땅에서의 운동에 버금가는 효과 얻을 수 있는, 말하자면 "은근히 힘든" 훈련이랄까. 실제로 말에게 수영 한 바퀴는 1400미터 거리를 전력 질주하는 것과 같은 에너지가 필요한다고 한다.


피니는 첫날은 한 바퀴, 둘째 날은 두 바퀴 수영 훈련을 했다. 관리사님께서 다음 에는 세 바퀴에 도전하겠다는 강한 포부를 밝히셨는데 과연 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물엔 들어가나 보다. 물이 무서워서, 혹은 한 번 해보니 너무 힘들어서 수영을 거부하는 말들도 종종 있다. 훈련 도중 익사하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순순히 들어가서 정상적으로 수영을 하긴 한다니 참 다행이라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수영이라도 열심히 하라피니를 토닥고 돌아왔던 터였다.


어제, 피니의 수영 영상을 처음으로 받았다. 

뭐랄까.. 순간 울컥했다고 해야 되나.


자기 에는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수심 3미터가 넘는 깊은 물에서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느라 고개를 내밀고 숨을 몰아쉬며 열심히 다리를 젓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우선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경주마"로 정해진 운명 탓에 우리 사람들의 알량한 기대, 욕심, 희망 등 모든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어린 망아지가 그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하는 모습,  표정 보면서 과연 내가 얼마나 이 말을 위하고 있었던 건지, 이 말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바라는 게 정당하긴 한 건지 근본적인 의문마저 들었다.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말이 희생되지 않게 하겠다는 게 내 다짐이었는데, 애를 지키고 보듬기는커녕 어느새 합세해서 누구보다도 더 가혹하게 애를 짓누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 개 하디를 보면서 항상 동물은 인간이 주는 것의 열 배, 백 배를 돌려준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그갓 식구가 된 망아지에게서 갑자기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피니는 수영을 열심히 한다. 좋은지 싫은지는 몰라도(아마도 싫겠지만) 하라니까 하는 거다. 매 순간 성실하고 충직하게.




피니야 힘 내. 수영이 원래 진짜 힘들어. 엄마도 해봐서 알아. 널 항상 응원해. 우리 괜찮을 거야. 고마워.




 




2020. 5. 16.

이전 03화 이런 관계는 처음이라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