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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20. 2024

여기는 루앙프라방이라구요


탁발행렬을 보기 위해 새벽에 숙소를 나서니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슴푸레한 가운데, 살짝 싸늘한 기온에 잠이 확 깨면서 기분이 상쾌했다. 조마 커피숍 맞은편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벌써 모여있었고 사람들 사이로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스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는 노승부터 아직 잠에서 덜 깬듯한 동자승까지 대략 20여 명의 승려들의 맨발의 행렬이 시작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구입한 음식물이 든 바구니를 들고 조용히 앉아서 차례를 기다렸다. 외국인과 현지인들이 뒤섞인 가운데 구경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모여 사진을 찍느라 여념 없었다. 전통옷으로 보이는 복장을 곱게 차려입은 라오스의 젊은 여자들은 자신들의 앞으로 스님이 지나가자, 고개를 숙이고 손을 높이 들어 자신들의 음식물을 시주하였다. 

행렬은 여행자거리를 따라 계속되었고, 큰 개 몇 마리가 행렬과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따라다녔다. 시주받은 음식물이 가득한 바구니를 든 스님들은 사원 앞에 이르러 일렬로 서서 사람들에게 합장을 하며 인사를 건네고 사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몇 스님만 남아 다시 정렬을 한 뒤 정문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일제히 염불을 외우면서 새벽의 공양 행렬은 끝이 났다. 스님들이 떠난 자리에는 묘한 여운이 있었다.


서서히 날이 밝아지며 모여있던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여행자거리 골목으로 이어진 새벽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골목을 따라 상인들은 벌써 자리를 잡아 내가 어젯밤에 먹었던 커다란 생선을 비롯해서 각종 생필품들이 좌판에 벌어졌고, 구경 나온 사람들로 골목은 혼잡했다. 말린 개구리나 이름 모를 곤충들도 있었는데 한 백인 남자는 가까이서 살펴보며 커다란 카메라로 촬영했다. 

생각보다 꽤 길게 이어진 새벽시장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새벽에 나올 때 굳게 잠겨있던 숙소의 철문은 활짝 열려 있고, 화단에 핀 꽃은 아침 햇살이 비춰 싱그러워 보였다. 숙소마당의  테이블에 앉아 문밖으로 보이는 골목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주인이 나와서 인사를 건넸다.

"새벽 공양에 다녀온 모양이죠?"

"네, 맞아요. 근데 문이 잠겨 있어서 울타리를 넘고 나갔어요. 하하."

내가 울타리를 넘는 시늉을 하며 대답하니 여주인이 놀란 표정으로 깔깔 웃었다.

"하하. 고리를 옆으로 비껴서 밀면 열리는데 몰랐군요!"

"오! 마이갓!"

놀라는 내 표정에 여주인은 다시 깔깔 웃었고, 나도 덩달아 웃었다.

"아침 준비로 이제 바쁠 시간이겠네요. 그렇죠?"

"네, 맞아요. 직원들이 벌써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요. 저는 다시 조금 잤다가 아침을 먹을까 해요. 근데 잠이 올지 모르겠어요. 뭔가 아쉽네요. 오늘 여길 떠나자니 그런 건가..."

"아! 맞다. 오늘 가시는군요. 섭섭하네요."

여주인은 따뜻한 미소를 건네며 카운터로 돌아갔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눈은 말똥말똥하고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아 이내 일어나서 침대 끝에 다시 앉았다. 사실 여행을 오고 나서 밤에 잠이 쉽게 오지 않아 계속 수면부족이었지만, 아침이면 일찍 눈이 뜨졌다. 그리고 여기 루앙프라방에서는 뭐랄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안정감과 포근함이 있었다.

방안 여기저기 펼쳐놓았던 짐을 캐리어에 넣어 정리하고 샤워를 했다. 혹시 빼놓은 짐이 없나 방안을 다시 둘러본 후 마당으로 나가니 몇몇 투숙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팬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해서 식사를 하고 난 뒤 캐리어를 들고 카운터로 갔다.

"6시 기차라고 했죠? 4시 10분에 기사가 데리러 올 거예요."

여주인은 변함없이 미소 띤 얼굴로 내게 말했다.


캐리어를 맡겨두고 스쿠터를 반납하기 전에 아침풍경을 둘러보기 위해 골목을 나섰다. 메콩강변으로 내려가서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출발했다. 아! 이 평화로운 아침풍경.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유로움. 나를 스쳐가는 풍경들이 순간 오래전 경험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한나절을 달려도 지겹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천천히 달리다가 푸시산을 오른쪽에 끼고 굽어진 도로를 돌아 나올 때, 난데없이 경찰이 나타나 경광들을 흔들며 강변 쪽으로 스쿠터를 세우게 했다. 먼저 경찰에게 잡힌 체구가 작은 백인 남자는 헬멧을 손에 들고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경찰은 백인 남자를 자신들이 타고 온 차 조수석에 태우고 차문을 열어둔 채 옆에 서서 무엇인가 말했다. 나머지 두 명의 경찰은 억지 인상을 쓰며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백인 남자가 경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떠난 뒤, 경찰은 나도 조수석으로 앉게 했다.

"면허증!"

세명의 경찰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경찰이 차에 한 손을 기대고 서서 인상을 쓰며 내게 말했다.

"면허증은 없어요."

나는 가방에서 여권을 건네주며 경찰에게 말했다.

여권을 잠시 살펴보던 경찰은 조수석 서랍을 열고 다시 인상을 쓰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10만 킵 지폐가 여러 장 쌓여 있었다.

"얼마를 내야 하나요?"

경찰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지갑에서 10만 킵 지폐 두장을 꺼내며 경찰을 바라보았다. 경찰은 다시 시선을 피하며 딴 곳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왠지 우스워 돈을 조수석 서랍에 넣고 차에서 내리며 밖에 서있던 다른 두 명의 경찰을 바라보자, 그들도 내 시선을 피하며 괜히 딴청을 피웠다.

"사실은 기름이 바닥이에요. 그래서 기름 넣으러 가는 길인데 중간에 멈추면 어떡하죠?"

나는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서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경찰에게 말했다. 경찰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경찰을 바라보더니 잠깐 대화를 주고받았다. 곧이어 두 명의 경찰이 내 스쿠터의 기름통 마개를 열어 안을 확인한 후 손가락을 동그랗게 그리며 웃어주었고, 주유소의 위치도 알려주었다.

"컵짜이!"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출발하며 허탈한 웃음이 나와서 혼자 실없이 웃었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스쿠터를 타고 더 돌아볼 생각이었지만,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아 스쿠터를 반납하면서 스쿠터 가게 주인에게 경찰 이야기를 하니 가끔 있는 일이라고 무심하게 대답을 하였다.

세 명이서 돈을 나누면 저들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공무원 월급이 우리 돈 20만 원 정도라고 하니 월급의 몇 배는 거뜬히 벌어들일까. 80년대 우리의 교통경찰들도 그런 식으로 모은 돈으로 집도 사고 땅도 사고 했다던데, 그들도 그 돈으로 가족을 건사하는 것일까. 

이봐요, 경찰 아재들요, 그래도 적당히들 하쇼. 여기는 너무나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루앙프라방이잖아요.


스쿠터를 반납하고 새벽시장이 열렸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예쁘고 아담한 카페가 있어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가게 안은 그늘이 져서 에어컨 바람이 없어도 덥지 않았고, 밖으로 보이는 테라스에는 뜨거운 햇살이 만들어낸 식물들의 그림자가 바닥에서 약하게 일렁거렸다. 

메뉴판에 적힌 라오전통커피의 맛이 궁금해서 주문을 하고 고개를 들어 가게 내부를 둘러보니, 한쪽에 그늘진 기둥에 작은 도마뱀이 붙어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뻐서 가까이 몰래 다가가서 사진을 촬영하려고 하니 금세 도망가버렸다. 익숙함이 편안함을 가져다주었을까. 라오스에 오고 난 후 숙소의 마당에서도, 오가는 길에서도 종종 봐서 도마뱀이 제법 귀엽게 느껴진 모양이다.

라오전통커피는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였다. 진한 에스프레소나 풍미 있는 아메리카노를 상상했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믹스커피랑 비슷했다. 그보다 커피의 맛이 좀 더 진하다고 해야 할까. 라오스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품질이 아주 우수한 걸로 알고 있는데 어쩌면 설명이 잘못되었거나, 다른 종류의 전통커피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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