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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20. 2024

발길이 머무는 곳에


게스트 하우스의 매력이라면 많은 다양한 나라의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오전 9시쯤 방에서 나가니 마당에 놓인 테이블마다 여행자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바게트빵과 오믈렛, 수박주스가 적힌 메뉴를 고르고 빈 테이블에 앉아 습관처럼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였다. 

70은 족히 되어 보이는 백인 남자 두 명, 또 그보다 조금 나이가 적어 보이는 서양인 남녀 세명, 국적이 쉽게 구분가지 않는 중년의 동양인 남자 한 명, 일본말로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젊은 일본남자 세명, 그리고 이미 식사를 마치고 노트북을 열심히 보고 있는 덥수룩한 수염의 백인 남자 한 명. 

여행자들의 얼굴에는 대게 낯설면서도 생기가 있는, 무어라고 말하기 어려운 어떤 색감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다. 

테이블에 앉아 게스트 하우스 울타리 너머 높게 자란 식물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남자 직원이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와우. 평범한 바게트가 이렇게 바삭바삭거리며 맛있을 수가 있구나. 근사한 아침식사야.

빵과 주스는 물론 오믈렛과, 조각조각 담긴 과일까지 깨끗이 비우고 낮은 대문을 열고 골목에 나가보았다. 아침 햇살을 잔뜩 머금은 골목에는 생기가 돌고 양쪽으로 놓인 화분의 식물들도 싱그러워 보였다.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양이. 이런 소박한 아침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꽝시 폭포를 가보고 싶은데요."

장부를 보며 무언가를 적고 있는 호스텔 여주인에게 내가 물었다.

"꾸왕시! 베리 굿!"

특유의 동남아 발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여주인이 말했다.

"11시 30분, 조마 커피숖 앞에 벤이 와요. 십만 킵이에요. 한 명 예약하면 되죠?"

"아, 네. 고마워요."

방으로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선글라스와 물을 챙겨 나오니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수염이 덥수룩한 백인 남자만 노트북을 열심히 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에 아주 재미있는 외모여서 몰래 그릴까 하다가 괜히 방해가 될까 싶어 그만두었다. 

메콩강변으로 내려가니 어젯밤의 적막은 온데간데없고 수면에 반짝이는 빛들과 강 주위로 늘어진 나뭇잎들이 어우러져 멋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나무 그늘에 잠시 앉아 강을 구경하고 있으니 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곳의 가을은, 그러니까 11월쯤이라고 해야 할까, 그맘때쯤은 어떤 풍경일까. 

강변의 식당에는 곳곳에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제법 소복이 들어앉아 있는 식당에서 이름 모를 튀김을 한 봉지 사들고 일찌감치 조마 커피숖으로 걸어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하루새 익숙해져 버린 듯한 거리를 바라보았다. 여러 대의 툭툭이와 밴이 길가에 섰다가 출발하기도 하면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오고 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 수많은 인연 속에 흘러가는 사람들.


커피를 다 마셔갈 때쯤 또 다른 벤이 오고 기사가 내리더니 꽝시라고 내게 물었다. 어떤 시스템으로 예약이 되며 나를 어떻게 알아보는 것일까. 

기사가 친절히 뒷문을 열어주어 고맙다고 말하며 탑승을 하는 순간, 오! 맙소사! 15인승쯤으로 보이는 차 안에는 사람들이 빈틈없이 앉아 있고 보조석이 하나 남아 있었다. 더구나 모두들 서양인. 구깃구깃, 주섬주섬 자리에 겨우 앉으니 어깨도 제대로 펼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나온 탄식에 옆의 백인 남자가 어깨를 어쓱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있나요?"

"40분 정도?"

내 물음에 다시 어깨를 어쓱하며 남자가 대답해 주었다.

여행자 거리를 벗어나서 조금 달리니 영락없는 깡촌이다. 그래도 길은 생각보다는 그리 험하지 않았고 나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이곳에도 도로가 생기고 또 그만큼의 자연이 사라지게 될까.

주차장에 도착하니 수십대의 밴과 툭툭이들이 가득했다. 차에서 내려 그늘하나 없는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매표소가 나왔고, 거기에서 오는 순서대로 사람들이 셔틀카에 탑승하면 꽝시 폭포로 출발했다. 셔틀카로 언덕을 10여분 정도 올라가면 다시 작은 주차장이 나왔고, 거기에서부터 꽝시폭포로 올라가는 시작점이었다. 우리의 관광지 모습과 별반 차이 없이 입구에서는 상인들이 곳곳에 난전을 펼쳐 간식거리나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자 입구에는 구조된 곰이 울타리 안에 보호되어 낮잠을 자고 있었고 사람들은 신기한 듯 구경했다. 울창한 숲길이 다시 이어졌고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에메랄드빛 물이 고인 큰 웅덩이에 몇몇 사람들이 들어앉아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크고 작은 웅덩이들이 이어졌고 어김없이 사람들은 물속에서 수영을 하거나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작은 폭포 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TV에서 간혹 보던 여행프로그램에서도 이와 비슷한 곳에는 거의 서양인들이 점령해 있던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유독 탐험심이 강한 것일까. 아니면 여행 인구가 많은 것일까.

위에서부터 계단처럼 이어진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에메랄드빛 웅덩이 곳곳에 하얀 피부를 반짝이며 사람들이 들어앉아 있는 모습은 안락한 낙원을 떠올리게 했다. 블루라군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발만 담그고 사람들과 자연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폭포가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하니 큰 숲사이로 드러난 바위들을 가르며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리고 있었다. 장엄한 느낌은 아니었으나, 유연하게 내리는 물줄기와 주변의 풍경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저 물의 시작은 어디일까. 역시나 폭포는 늘 주인공이 되는군. 사람들은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중국인 커플이 내게 사진을 부탁하고는 알 수 없는 중국말을 하며 웃었다. 

찰칵, 당신들의 추억에 나도 한몫했답니다.


내려오는 길에 한쪽으로 우거진 숲길을 따라 작은 구름다리가 있어 그늘에 앉아 발을 담그고, 오기 전 메콩강변 식당에서 사 왔던 튀김을 꺼내 한입 베어무니 꿀맛이다. 발밑에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이름 모를 튀김을 먹고 있으니 이런 호사가 없다 싶다. 외로움도 호사가 될 수 있구나. 

작고 귀여운 도마뱀이 내 옆에 잠깐 멈추었다가 화들짝 놀라며 도망쳤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조금 더 내려오다 보니 건너편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또 다른 구름다리에는 백인 여자 네 명이 비키니 차림으로 누워 꿈쩍도 않고 선텐을 하고 있었다. 루앙프라방의 햇볕은 어떤 느낌인가요?


셔틀카가 우리를 내려줬던 곳에서는 사람들을 막 태운 셔틀카가 출발하고 곧이어 또 다른 셔틀카가 도착했다. 제일 먼저 운전석 바로 옆에 앉으니 청자켓을 입은 잘생긴 청년이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금방 사람들이 다 차고, 청년은 능숙한 동작으로 오케이 한마디를 외치고 출발했다. 청년의 폰에서는 제목을 알 수 없는 K팜이 흥겨운 리듬으로 흘러나왔다. 괜히 개선장군이 된듯한 이 느낌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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