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진 야시장은 초입부터 수많은 사람들과 오토바이와 툭툭이들이 섞여 혼잡했다. 한쪽으로 큰 장터처럼 형성된 곳에는 수많은 테이블이 놓여있고,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싼 포장마차를 천천히 돌며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들을 골랐다. 각종 생선들, 쌀국수, 꼬치, 과일, 햄버거는 물론 한국의 김밥과 떡볶이를 파는 곳도 있었다. 나는 볶음밥과, 닭꼬치와 비어라오 한 병을 주문하고 빈 테이블이 보이자 잽싸게 가서 앉았다. 혼자여서 아쉬운 점 중에 하나는 음식을 고를 때 제한이 따른다는 것이다.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와, 각종 음식들이 섞인 냄새와, 밤을 밝히는 조명이 어우러져 활기가 넘쳤다. 테이블과 사람들 사이로 큰 개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지나다녀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녀석은 혼자인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내 옆에 와서 앉길래, 꼬치를 조금 던져주니 금세 삼켜버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없어. 너도 여기 사람들처럼 골고루 음식을 선택해서 먹어보렴.
수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문득 살아가는 일의 경이로움을 생각하게 한다.
식사를 끝내고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야시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양쪽으로 각종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고 사람들은 흥미롭게 구경하며 줄을 서서 걸어 다녔다. 비엔티안이나 방비엥의 야시장에는 질 낮은 공산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이곳에는 루앙프라방에서 생산한 커피라든가 수공예품 등 볼거리가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상인들 중에는 앳되어 보이는 여자들도 많이 보였다. 루앙프라방이 북쪽에 위치해서인지 그들의 생김새도 비엔티안이나 방비엥 여자들의 외모와 조금 달랐다. 이곳에 미인이 많다는 소문이 괜한 이야기는 아니었구나. 아마도 예전 프랑스 식민지 시절로 인한 혼혈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세로로 길게 이어진 야시장은 거리가 꽤 되고, 많은 사람들로 인해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처음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나오니 조그마한 소녀들이 길가에 앉아 바나나를 팔고 있었다. 새까만 맨발에 남루한 옷을 입고 해맑게 웃는 소녀들. 그 소녀들뿐만 아니라 거리를 따라 갓난아기를 업은 어린 소녀와, 또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들. 그렇게 바나나를 파는 여자들이 곳곳에 있었다.
“한송이에 얼마예요?"
“10000킵이에요.”
바나나 한송이가 우리 돈 600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고작 몇 송이를 팔기 위해 맨발로 길바닥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들.
바나나를 양손에 가득 들고 오면서 나도 모르게 순간 목이 메었다. 가난하다는 것이 이들 삶의 절대적인 걸림돌은 아닐 텐데, 왜 나는 순간순간 나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울컥하는 것일까.
밤이 되어서 골목골목 밝혀진 가로등으로 인해 더 운치 있어진 골목길을 따라 낮에 봐두었던 메콩강변의 식당으로 걸어갔다. 야외 테이블 한쪽에는 젊은 연인이 나란히 앉아 강을 바라보며 말없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양손에 바나나를 가득 들고 테이블에 앉아도 개의치 않고 무심하게 점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비어라오와 모닝 글로리를 시키면서 바나나를 한송이 건네주니 점원은 웃으며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깜깜해진 메콩강에는 불을 밝힌 배가 천천히 지나갔고, 식당의 스피커를 통해 비틀즈의 노르웨이 숲이 흘러나왔다. 하루키가 언젠가 루앙프라방에 머문 적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이곳에 들른 것은 아닐까. 이토록 적절한 음악이라니! 그리고 이토록 황홀한 비어라오의 맛이라니!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이토록 목 넘김 좋은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
십 대로 보이는 한 무리의 남녀가 쌍으로 들어와서 아무렇지 않게 맥주를 시키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깔깔거렸다. 녀석들, 너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비어라오에 맛을 들이는구나.
말없이 강을 바라보던 젊은 연인이 나가고, 깔깔거리던 십 대들도 곧이어 떠나자, 깜깜한 강의 적막이 남겨진 가운데, 조금 전 비어라오 한 병을 주문해서 식당에서 이어진 계단을 따라 강가 풀숲에 홀로 자리 잡은 백인 남자가 낮게 흥얼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여기에서는 어쩌면 아무 데나 앉아 혼자서 하염없이 울어도 괜찮은 곳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