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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o life Aug 12. 2022

장마.

짧은 소설

장마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어젯밤부터 아주 약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았다. 뉴스에서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리가 들렸다. 몸은 자꾸 늘어지고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비가 오면 그랬다. 매년 그랬나 생각해 봤지만 그건 아니다. 작년에 있었던 일 때문일지도.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는 비가 오는 날이거나 어두운 구름이 잔뜩 있는 날에는 꼭 그랬다.


 비는 그칠 기미가 안 보였다. 장마가 시작됐다는 기상캐스터의 말이 떠올랐다. 창으로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차분히 들려왔다. 현정은 식탁에 앉아서 노트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빗소리에 별 관심이 없었다. 어제 낮까지만 해도 소란스럽던 매미 소리가 비 때문인지 간간이 울렸다가 그쳤다. 비 오는 날에도 짝을 찾고 있었다. 현정에게 다가가 어깨너머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마우스가 움직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뭐해?”

“어? 아! 어제 마무리 못한 거. 주말인데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 하는 건지….”


 집에 들어왔을 때 현정은 노트북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하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앞에 앉혀놓고는 직장 상사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자기가 맡은 파트는 모두 끝이 났다고 보고했더니 자기 파트를 도와달라나. 상사의 말이니 그냥 하겠다고 했는데 이건 완전히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인 거 있지. 아니 도와달라는 건데 왜 새로 해야 하는 건대! 내가 그 일을 진행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온갖 짜증 섞인 말을 쏟아냈다. 나 역시 담당했던 파트의 일을 겨우 마감하고 제출한 뒤라 편하고 싶었지만, 잠잠히 듣고 있었다. 간간이 반응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열심히 반응했다.


“오늘은 괜찮아?”

 밤에 놀러 온 현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어….”

“아닌가 보네.”

 침대로 다가와 잠시 얼굴을 살피더니 이마에 손을 얹는다. 손에서 비릿한 흙의 향기가 났다.

“열은 없네. 어제 무리했어.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일주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 놓고는 말이야. 그놈의 상사가 문제야 아니면 새로 들어온 신입이 문제야 아니면 진짜 일 때문에 그런 거야?”

 쏟아지는 질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질문은 그만하지… 머리가 울린다 울려.”

 몸을 일으켰다. 곁자리에 걸터앉아서는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실수였다. 더 어지러웠다. 머릿속이 흔들렸다. 양손으로 머리를 잡았지만 머릿속은 계속 흔들릴 뿐이다. 빈 속이 울렁거렸다.

“웁!”

“괜찮아?”

“아니, 어지러워. 이게 네가 질문을 하도 해대서 그렇잖아!”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참…”

현정은 어이가 없다며 팔짱을 꼈다. 화장실로 움직이자 현정은 부엌으로 향했다.



 머리는 계속 아팠다. 현정의 목소리 때문인지, 며칠을 무리하게 업무를 해서 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마셨다. 차가운 기운이 목으로, 가슴으로 이어지더니 사라졌다. 현정은 아직도 식탁에 앉아 작업 중이었다. 시계를 보니 2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부엌의 작은 창문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자야지? 벌써 2시가 넘었는데….”

“응! 먼저 자!”

 고개를 돌리지도 않으며 대답했다.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 이내 관뒀다. 지금 상태면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문을 열고 침대로 파고들었다. 머리의 통증 때문이지 뒤척였다. 눈을 뜨니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문 밖에서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몸을 움직였다. 부엌 등이 켜져 있었다. 현정은 아직 그 자세였다.

“아직도?”

“어?! 깼어? 잘 자는 거 같더니 아니었나 보네. 아픈 건 어때? 괜찮아?”

‘내가 아프다고 했었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선 컵에 따랐다. 현정에게 물통을 들어 보였다. 컵을 쓱 내밀었다. 노트북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얕게 퍼졌다.

“무슨 일인데 이 시간까지 하고 있어? 잠은 자야지.”

“어, 자야지, 잘 꺼야, 암 자야지. 계속 이러면 나 죽을 거야!”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얼른 자!”

 노트북에 손을 가져갔더니 손등을 탁 친다.

“아직!”

 따끔했던 손 등을 문지르며 마지못해 방으로 향했다. 부엌 등 아래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는 현정의 모습이 눈이 자꾸 간다. 창으로 빗소리가 좀 더 세게 들렸다.



“뭐하냐?”

 재국의 물음에 깜짝 놀라 고갤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주 그냥 넋을 놓았구나! 아주!, 아! 미안 이런 말은 좀 그러려나…. 암튼 뭐하냐?”

“아니 그냥 피곤했나 봐….”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재국은 짜증 난다는 표정이었다.

“너 아직도 그 일에 빠져 있는 거냐?”

“아니.”

 대답을 흘렸다. 재국은 그게 못 미더웠는지 술 먹는 제스처를 입 앞에서 했다.

“다음에, 너무 힘드네. 이번 장마는 제법 길다던데…. 지겹다.”

“그렇네, 좀 기네. 길어.”

 창에 맺힌 빗 자국이 계속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흐려진 시야에 먹구름이 흔들리며 흘러갔다.

“아직도 사진은 그 자리 그대로 있냐? 이제 정리할 때도 되었잖아. 내가 도와주까?”

“아니. 좀 더 그대로 둘래. 그냥 그대로….”

“그래도 시간도 흘렀는데 이제 다른 사진으로 해도 되지 않냐? 언제까지 그 사진 붙잡고 있으려고?”

“괜찮아…. 아직은 그렇네….”

 재국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담배를 입에 물고는 불을 댕기진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눅눅한 기운이 현관으로 밀려왔다. 현관 등이 깜박거렸다. 신을 벗고는 거실로 향했다. 부엌 테이블 위 엎어져 있는 사진을 힐끔 보고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현관 등이 꺼지자 깜깜해졌다. 창으로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들만 빗속을 뚫고 흐리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 왔어?”

“넌 왜 네 집에 안 가고 여기 있는 건데?”

“왜, 불만?”

“아니 일은 회사에서 하고, 집에선 쉬어야지?”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있으면 하는 거지. 물 한잔만 줘라.”

“아씨! 밥은 먹고?”

“갑자기?” 현정은 피식 웃었다.

“몰라!”

“내가 밥을 먹었나? 기억에 없네….”

 싱크대는 깨끗했고 건조대는 건조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텅 빈 공간이 꽤나 넓다. 뭐 먹을걸 미리 챙겨둘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 있는 것들을 보니 적당히 한 끼 반찬은 될듯했다. 밥솥 속엔 밥알이 말라서 색이 변해 있다. ‘참 나도 밥을 안 먹는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먹을만한 반찬을 꺼내선 자잘하게 썰었다.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루고 밥과 썰어둔 반찬을 같이 넣었다. 빗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뭐해?”

“밥.”

“어! 나를 위해서?”

“아니, 나 먹으려고.”

“참, 말도 못 해요. 그래서 귀여워. 그래 귀여워” 현정은 말을 하고는 웃었다.

볶음밥을 그릇 두 개에 나눠 담았다. 그 위로 달걀프라이도 하나 올렸다.

“나 요새 머리가 좀 아프다. 이상하게 아파. 음.. 망치로 두드리듯이 미친 듯이 아팠다가 사그라들어. 이상하지? 병원에 가봐야 하나?”

“병원 가. 그것도 빨리. 그러다 죽을지도 모르잖아.”

“이렇게 건강한 내가? 너무 건강해서 걱정이 고만!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냐!”

“병원 가. 고집부리지 말고, 니 몸은 챙겨야지. 밥 먹고 집에 가서 좀 자고, 내일 병원 가! 딴소리 말고!”

“여기서 자면 안 되냐? 집에 혼자 들어가기가 싫네 며칠 여기 있었더니….”

“그러던가. 내일 병원 가는 거다.”

나는 접시를 치웠다. 현정은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는 이내 집중했다. 물소리가 빗소리에 섞였다. 그릇의 기름이 물과 같이 흘러내렸다.



“야! 무슨 일이야! 그게 무슨 말인데!! 현정이가 왜?! 뭐! 다시 말해봐! 장난 아니냐? 장난이라고 해!”

현정과 같은 회사에 있던 재국의 전화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서는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장마가 더 길어질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게 벌써 일 년이나 지났나?”

재국은 술잔을 채우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괜찮아질 때도 된 거 같은데 아직이라니 너도 참 어지간하다.”

“괜찮다니까. 뭘 걱정을 그렇게 하냐. 괜찮다고.”

“그래, 그래. 알아 안다고, 네 식탁에 있을 그 사진이 마음에 걸려서 그런 거지 알아 안다고, 내가 모르겠냐고.”

나는 술잔을 흔들어서는 잔을 채웠다.

“네가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니까 술이 자꾸 들어가잖냐, 조용. 이거 막잔 하고 가야겠다.”

재국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잔은 비었고, 빗소리는 여전했다.


현관 등이 팟하고 켜졌다. 집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현관 등은 현관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거실 등을 켜고, 부엌 등을 켰다. 엎어진 사진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는 식탁이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아직이었다. 

병원을 가라고 했던 다음날 현정은 회사에서 쓰러져 있는 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실려갔다. 응급실에선 더 이상 치료가 안된다고 했다. 아니 치료가 필요 없다고 했다고 했다. 재국은 그 말에 병원에서도 농담을 그딴 식으로 하냐며 의사 멱살을 잡았다고 했다. 같이 온 동료들이 겨우 뜯어말렸다고 했고, 그제야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자꾸 생각이 났다. 왜 끌고 병원에 가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했었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그 생각이 자꾸 돌아와 가슴에 박혔다.

액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사진 속 현정을 마주했다. 

비가 왔다. 




장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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