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yspne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nAh Aug 22. 2022

콩트는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는 거야

Dyspnea#213



2131

문득 기획을 내가 중요시 여기는 이유는, 본연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기획이라는 것은 판을 짜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후에야 움직이는 것이니까. 판을 짜지 않고,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오직 순간의 감각으로 움직이는 본능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는 기획을 중시 여기게 된 것이 아닐까. 



0122

편의점에서 근무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지니어스의 김경훈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나 오만했었나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는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무엇이라도 깨치려고 했다. 나는 편의점을 어떻게 생각했나? 



0124

내가 겨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나 할 사람으로 보여?라는 태도를 견지해서는 아무것도 발전하지 않는다. 그 괴리를 스스로 줄여야 한다. 그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의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그 소속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인정해야 한다. 나의 가치의 효용은 그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맞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그다음으로 분명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0137

이 근처가 유흥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흔히들 말하는 삐끼들이 많이 온다. 보통 그들은 담배 심부름을 하는데, 얼마 전 독서모임의 독후감에도 썼던 ‘그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내게 오는 것이니 그대로 두어라’고 신이 말했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뿐이다. 누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누구는 술집에서. 모두가 자신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 



0146

방금 전 한 분이 뚫어뻥은 없냐고 물어보고 나가셨는데 그다음으로 오신 분도 뚫어뻥을 물어보고 가셨다. 갑자기 세상의 변기들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때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에서 이상한 기시감을 느낀다.


 

0300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다. 하물며 도망치지 않고 안주하는 곳에 낙원이 있겠는가. 결국 낙원을 찾기 위해서는 도망치는 것도, 안주하는 것도 답은 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 낙원이 신기루 같은 것일지언정, 그 신기루의 형태라도 보기 위해서는 안주도, 도피도 답이 아니다. 



0359

늘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 바깥 세계를 끊임없이 두드렸던 사람-이라고 묘지명을 쓰면 어떨까? 



0413

나는 내가 가지는 변주를 사랑해. 



0459

콩트는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는 거야. 맥베스가 그들의 선생의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온 세상 모든 콩트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어. 



0602

 6만 4천4백 원을 벌고 돌아가는 길. 뿌듯하다 뿌듯해.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우리의 불행을 서로 늘어놓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