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따라 세계일주
커피에 애정을 가지고 일을 하고 그만두기까지 약 8년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끝으로 아마도 제 인생에서 바리스타로서 일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여정을 끝마쳤습니다. 풋풋했던 대학생 새내기 시절부터 20대 후반이 되어버린 지금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커피는 항상 제 삶의 일부로 존재했습니다. 매일 아침을 커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지요.
2012년,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사귄 친구들은 하나둘씩 동아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딱히 관심 가는 것도 없었고 그렇게 사교성이 좋지도 않았던 저는 동아리는커녕 흔한 모임조차 없었습니다. 어느 날, 대학생활을 이렇게 심심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커피였습니다. 캠퍼스 안에서 저녁 시간에 취미로 커피를 배워볼 수 있는 수업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19살 학생이었던 저에게는 적지 않은 수업료를 지불하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커피는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분명히 똑같은 도구와 재료를 사용해서 커피를 만드는데 모든 잔이 다른 향과 맛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만든 커피는 좋은 향과 맛으로 마시는 사람을 매료시켰지만, 어떤 사람이 만든 커피는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제까진 맛있었던 제가 만든 커피가 다음날에 만들었을 땐 맛이 없는, 그런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신비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는 커피에 푹 빠지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매력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커피 전문가
친한 친구들에게도 제가 느끼는 커피의 신비로움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커피에 대해서 공부한 것들을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서는 소위 커피 전문가가 되어있었죠. 그리고 전문가라는 말에 한껏 높아진 콧대를 들고 여행을 다니면서 유명하다고 하는 카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카페에 들어가서 전문가 행세를 하며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곤 했습니다. 서울이나 대구, 부산은 물론이고 첫 유럽여행을 가면서도 유명하다고 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건 맛있네', '이건 맛없네'평가하며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꼴값 떨었구나 하며 웃음이 나오는 일입니다만, 그 당시에는 나름 진지하게 맛을 보고 노트에 기록을 하곤 했죠. 그런 식으로 몇 년을 전문가 행세를 하며 저만의 카페 투어를 다녔습니다.
풋풋했던 시절에 커피를 무턱대고 좋아하기만 했던 것과 다르게 제대로 한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대 전역을 앞두고 제가 커피를 처음 배웠던 카페에서 1년 정도 제대로 커피를 공부하면서 일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커피를 진지하게 배우면서 여러 가지 고민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취미로서 사랑했던 것이 일이 되었을 때 좋아하는 그 마음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그리고 평생 커피 일을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고 싶었죠.
그러나 흔한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막상 저에게 닥친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쉽지 않았던 현실은 커피나 일이 아니라 사람에 있었던 것은 나름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일을 그만두리라고 예상했던 요인에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직 커피 하나만을 바라보고 시작했고, 그것만 신경 쓰면 될 줄 알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매일매일이 행복할 줄 알았죠. 그러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스물셋의 저에게는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나 거대하고 넘을 수 없는 큰 산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일을 하기 전부터 알던 사람들이었고, 좋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터에서 마주한 그들은 달랐습니다.
결국 스스로 지쳐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또는 '그건 네가 감당했어야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도 제가 그 당시에 느낀 감정은 정상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며 받는 스트레스를 쉽게 이겨낼 수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그 스트레스를 무난하게 넘기지 못했던 것이죠.
어쩌면, 스쳐 지나가지도 못했을 사람들
마지막으로 일을 그만두면서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푹 빠져 지냈던 커피 전문가의 여행은 끝을 맺었습니다. 커피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현장에서 일까지 했던 그 기간 동안 커피에 푹 빠져 지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후회는커녕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만큼 즐거웠던 에피소드도 여럿 만들었죠. 그리고 그중에 몇 가지를 여러분과 나눠보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주제는 바로 사람, 그리고 여행에 대한 것입니다. 커피 전문가로서, 바리스타로서 여행을 하면서 어쩌면 스쳐 지나가지도 못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바리스타였기 때문에 교류할 수 있었던 사람들, 바리스타였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기회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해보려고 합니다. 보통의 여행 에세이처럼 외국 여행지의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가끔은 도시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고, 가끔은 커피를 공부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 글이 여러분들에게 최대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그저 즐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 이제 또 다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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