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따라 세계일주 - 타이베이, 미라클 커피

Taipei, Miracle Coffee

by 만얼

미라클 커피도 심플카파와 마찬가지로 2018년과 2020년 모두 방문했던 곳이며 대만에 있으면서 가장 유쾌하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했던 곳이다. 이 카페는 심플카파의 바리스타가 강력하게 추천해주었다. 기존에 함께 일했던 젊고 경험 많은 바리스타들이 그곳에서 나와서 새로 오픈한 곳이라고 한다.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셔볼 수 있을 거라며 가능하다면 꼭 한 번은 가보라고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이 카페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당히 많이 고민을 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이 숙소를 잡는 타이베이 시내 쪽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갔던 2018년과 2020년 모두 혼자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온전히 내 시간만 투자해서 다녀올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2018년의 기억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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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좌) 비가 많이 왔던 2018년, (우) 맑은 날씨의 2020년,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날짜인 1월 7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비가 쏟아지던 아침, 오픈 시간에 맞춰서 숙소에서 지하철을 타고 50분을 넘게 갔다. 이 한 곳을 다녀오는데 걸리는 시간만 거의 2시간이었기 때문에 친구와 같이 가자고 말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곳이다. 일반적인 카페처럼 커다란 간판이 없어서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스며드는 따뜻한 조명이 빨리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0180108_095704.jpg (c)만얼 | 비를 털고 우산은 입구에 둔 채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여의도 같은 느낌을 풍기는 곳이었다. 지도를 펼쳐봐도 주위에 유명한 관광 스폿은 하나도 없었고 상가 건물과 아파트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하철역을 나와보니 거리 가득 바쁘게 걸어 다니는 직장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직장인들을 주요 타깃으로 잡았던 건지, 넓지 않은 매장에 의자와 테이블도 없었고 머그컵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메뉴도 커피 종류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블루 톤의 분위기와 높은 천장에 매달린 구름 모양의 독특한 조명, 둥글둥글한 매장 인테리어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입구에서 우산을 살짝 털어낸 뒤, 우산을 그 자리에 두고 매장으로 들어갔다. 괜히 차가운 빗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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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매장 사진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원두 매대 옆의 메뉴판을 봤다. 커피 메뉴에 사용하는 원두가 매주 바뀌는 것 같았는데, 이번 주에는 파나마 원두를 사용한 에스프레소가 제공된다고 해서 바로 주문을 하고 앞에 서서 기다렸다. 여자 바리스타는 주문을 받으면서 마시고 가는 거냐며 의자가 없는데도 괜찮은지 미안한 어투로 물어봤지만 흔쾌히 괜찮다고 답해주었다.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새 남자 바리스타가 한 명 더 들어와서 바로 커피를 추출해 주었다. 차가운 얼음물과 흰색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 한 잔. 꽤 많은 비가 내리던 날, 창밖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그 분위기 만으로도 이미 맛이 좋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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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석류느낌이 강했던 에스프레소


분위기도 분위기였지만, 맛이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향과 맛에서 머릿속에 새빨간 석류 알갱이들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달고 새콤하고 깔끔했다. 50분 걸려서 찾아온 게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커피를 마시던 잔을 들고 다시 메뉴판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웬걸. 내추럴 가공방식의 파나마 원두였다. '내추럴인데도 이렇게 깔끔하다니..!' 놀라웠다.


이전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추럴 가공방식에서 발효시간과 주변 환경을 잘 제어하지 못했을 땐, 자칫하면 오래되어 퀴퀴한 과일냄새(발효취)가 풍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커피는 정말 깔끔하고 달았다. 그렇게 혼자 감탄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두 명의 바리스타들이 그 모습이 웃겼는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커피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네, 맞아요. 지금은 그냥 여행 중이에요. 그나저나 커피가 진짜 맛있네요"


"하하 고마워요. 그럼, 바리스타예요?"


"음. 지금은 학생이고, 예전에 바리스타로 일했어요. 아마 앞으로도 이 일을 할 것 같아요. 여행을 다니면서 이곳저곳 카페 투어를 다니고 있는데, 타이베이에서는 이런 곳들을 다녀왔어요."



이 바리스타들과는 이전에 유럽 비엔나에서 웃고 떠들었던 바리스타만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타이베이에서 다녀왔던 카페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는 심플카파에서 추천해주었다고 하니 꽤 신기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많이 질문해왔다. 어떻게 이렇게 잘 찾아다니냐며, 본인들도 예전에 한국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땐 카페를 딱 한 군데밖에 다녀오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마침 그 시간에 들어오는 손님들도 없었고, 서로 막 신나서 떠들다가 인스타그램을 켜서 유럽에 갔을 때 다녀왔던 카페들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궁금한 것들을 묻고 답하고를 계속했다. 이내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한 바퀴씩 다 돌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대만에서 카페를 다니며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렇게 깔끔한 내추럴 커피를 풀어내고 있는지, 대만의 카페 문화는 어떤지 등등. 이 바리스타들은 하나하나 전부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네가 신기해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대만의 전통 차 문화에 관련이 있는 것 같다며 한국은 어떤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또 이다음의 여행지는 어디냐며 묻고 그곳에는 친한 친구가 하는 매장이 있는데 본인에게 소개받고 찾아왔다고 이야기하라면서 카페의 주소까지 다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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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대화를 나누던 중에 마셔보라고 받은 커피들과 돌아가는 길에도 마시라며 건네받은 커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40분이 지나있었다. 친구와 다시 만나기로 한 시간을 맞추려면 사실 꽤 빠듯했다. 아쉽지만 이야기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가야만 했다. 다음에 대만에 또 오게 되면 반드시 다시 찾아오겠다며 카페 투어를 다니는 동안 처음으로 함께 셀카도 찍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매장을 나가려는데 잠시 기다려보라며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 건네주었다.


이들과는 지금까지도 서로 SNS로 종종 소식을 전하고 가끔은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리고 2020년에 왔을 때도 이곳을 또 찾아갔다. 먼저 이야기를 하고 찾아간 게 아니라서 이 사람들을 매장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혼자 왔다 간 것을 알고 남자 바리스타가 따로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어떤 희열 같은 것이 가슴을 뜨겁게 채운다. 평범하게 커피 한 잔을 맛있게 먹고 원두를 사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사람들이 몸을 담그고 있는 커피 시장에서는 어떤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웃나라의 커피 시장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긴 시간 동안 나눠볼 수 있다는 것은 꽤 벅차오르는 감정을 선사한다.




타이베이라는 도시에서는 이 카페가 마지막이었다. 이후 타이중과 가오슝이라는 도시로 가서 새로운 카페를 찾아다녔고 역시나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만 다음 글에서는 잠시 쉬는 느낌으로 카페 이야기보다는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한 생각과 여행을 다니면서 좋았던 곳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미 두 번을 다녀왔지만 몇 번이고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코로나의 확산세가 심해져만 가는 요즘, 조금만 더 참고 배려하며 건강을 지킬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이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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