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따라 세계일주 - 타이베이, 피카피카

Taipei, Fika Fika Cafe

by 만얼


20180106_204714.jpg (c)만얼 | 대만에서도 유명한 온천


역시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비 내리는 날의 차분한 분위기와 특유의 냄새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원래는 비가 오는 날을 반기는 편이다. 그러나 이때 대만에 갔을 땐 잠시라도 비가 멈추는 날이 없었다. 여행 중 대부분의 날이 흐렸고 잠시라도 맑게 개인 하늘을 볼세라 치면,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곤 했다.


슬슬 지쳐갈 때쯤 밤에 한 온천을 찾았다. 옛날 목욕탕 같았던 그 작은 온천은 정말 오래전부터 그대로 이어져 온 듯했다. 시설이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장시간 빗속을 걸으며 눅눅해져 지친 몸을 시원하게 풀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대만에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 꽤 많다고 하는데, 코로나가 종식된 후 대만에 다시 가볼 땐 온천을 테마로 휴양을 한 번 가보고 싶기도 하다.




20180107_135532.jpg (c)만얼 | FikaFika Cafe 정면


고급스러운 주택단지와 공원 사이에 들어선 이 카페는 타이베이에서 꽤 유명한 것 같았다. 카페 안팎으로 사람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기다려야만 했다. Fika Fika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이 카페를 찾아오게 된 것은 Simple Kaffa를 갔던 이유와 비슷했다. 이 카페의 오너이자 헤드 로스터인 James Chen이라는 사람이 2016년 Berg Wu가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챔피언이 되었을 때 사용했던 커피를 직접 로스팅해주었다.


2013년에 첫 오픈했지만, 당해에 Nordic Roasting Championship이라는 로스팅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유명세를 더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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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매장 내부


매장 안에는 손님만큼 직원들도 많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직원이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거냐 물어온다. 그렇다고 답한 다음 그 직원의 안내에 따라서 간이 의자에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직원이 다시 와서 자리로 안내를 해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카운터로 가서 가벼운 샌드위치 디저트 하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오늘의 싱글 오리진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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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좌)아이스아메리카노 (우)오늘의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형태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다르게 에스프레소라고 받은 두 개의 컵에 담긴 음료는 단박에 '에스프레소'라는 메뉴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미는 듯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직원에게 한 번 물어봤다.



"이게 제가 주문한 오늘의 싱글 에스프레소 맞죠...?"


"네 맞습니다. 많은 분들이 물어보세요. 저기 보이는 작은 머신을 이용해서 추출해서 제공해드리고 있어요"


"그렇군요, 원래 이렇게 해서 마시는 건가요? 에스프레소가 이렇게 나오는 경우는 처음 봐서 신기하네요! 솔직히 조금 놀랬어요"


"하하 이해합니다. 먼저 유리잔에 담긴 차가운 커피를 마신 다음에 따뜻한 커피를 맛보세요. 번갈아가면서 드셔도 좋지만, 얼음이 녹기 때문에 차가운 커피를 먼저 다 드신 후에 따뜻한 커피를 드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사실 궁금한 게 훨씬 더 많았지만 더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추출을 하는 이유가 뭔지,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에 비해서 어떤 장점이 있는지 또는 처음부터 이렇게 추출을 한 건지, 아니면 물을 섞은 건지 등의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밀려 들어오는 손님을 보아하니 이 직원을 오래 잡아두면 안 될 것 같았다.



STEREOTYPE


우리는 각종 고정관념, 즉 스테레오 타입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장 흔한 것이 남자는 이래이래야 하며 여자는 이래이래야 한다는 등의 것들이 있다. 요즘은 사회적인 움직임과 개개인의 인식 변화 덕분에 그런 것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음식에 관한 고정관념은 꽤 강력한데도 우리가 대부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카페에 오랜 시간 있다 보니, 커피에 관련된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이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로 나온 음료를 보고 의아해했던 나처럼 시나몬 가루가 없는 카푸치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구마라떼가 없는 카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꽤나 강력해서 자칫하면 손님과 바리스타 모두가 불쾌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친절한 바리스타의 웃음 섞인 설명 덕분에 '에스프레소는 진하고 걸쭉하고, 캐릭터가 강하게 살아있는 커피여야만 해'라는 나의 강력한 고정관념이 말랑하고 유연하게 바뀔 수 있었다. 만약, 바쁜데 왜 귀찮게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이 대충 넘어갔다면, 조금 더 다양한 관점으로 음료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고정관념을 더 강하게 굳히느냐, 아니면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느냐는 주변 사람과 환경의 영향이 꽤 큰 것 같다. 즉, 지금 우리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시야를 좁히고 있을지도, 반대로 그 사람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 번쯤 진지하게 스스로를 되돌아볼 일이다.




20180107_142635-01.jpg (c)만얼 | 오늘의 싱글 오리진 에스프레소 커피


친절했던 바리스타 덕분에 시야를 넓힐 수는 있었지만, 커피의 맛 자체는 새로운 느낌이 아니었다. 뭔가 애매한 느낌이었다. 커피의 캐릭터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차를 마시는 것처럼 은은한 느낌도 아니었다. 약간의 떫은 느낌뿐이라 꽤 아쉽기만 했다. 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단맛이 정말 좋고 부드러웠으며 함께 주문했던 샌드위치도 맛이 좋았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충분한 휴식공간이 되어준 것에 감사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비가 내리는 거리로 나섰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manall/5 (드라이 카푸치노와 웻 카푸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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