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따라 세계일주 - 타이베이, 루푸스 커피 로스터스

Taipei, RUFOUS COFFEE ROASTERS

by 만얼


대만 타이베이에도 동물원이 있는 것을 아는가? 타이베이 남동쪽에 Taipei Zoo라는 지하철 역에서 나와 언덕을 따라 걸어올라 가면 동물원이 나온다. 그 규모가 생각보다 크고 구경할만한 동물들도 정말 많다. 어떤 스폿에는 원숭이들이 돌아다니면서 관광객들에게 인사를 해주기도 하고 가끔은 공격(?)을 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추천하는 곳 중 하나다.


동물원에 가기 위해서는 갈색의 'Wenhu' 지하철 라인을 타고 가야 하는데, 마침 이 카페가 그 라인의 지하철역 근처에 있어서 가볼 수 있었다. 심플카파의 바리스타가 이곳을 추천해줘서 미리 저장해뒀는데 마침 타이밍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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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카페 정면, 바 사진


꽤 오래되어 보이는 문을 따라 들어가니, 독특한 분위기의 매장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수많은 작은 장식물들이 이곳저곳에 있었으며 컵이나 커피 기구 등이 상당히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조명도 밝은 흰색이 아닌 노란 느낌을 선택해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게다가 음악마저 묵직한 리듬의 뉴에이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함께 간 친구는 지금까지 대만에 와서 같이 가봤던 카페 중에서 분위기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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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구석 자리에서 바깥으로 보이는 모습, 바로 옆의 벽에 걸린 액자


바 앞쪽으로는 자리가 하나도 없었는데, 다행히도 매장의 깊은 안쪽에 로스팅 머신 옆쪽으로 테이블이 한 곳 비어있었다. 구석진 자리임에도 밝은 조명과 더불어 벽에 액자가 걸려 있었고, 조용하게 음악을 즐길 수도 있어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자리로 안내를 받은 후, 메뉴판을 받았다. 앉은자리에서 주문을 하고 음료를 서빙받을 수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세트 메뉴가 있었다. 그리고 각종 원두를 본 후, 나는 파나마 게이샤 원두를 이용한 세트 메뉴 하나를, 친구는 더치커피 아이스 한 잔을 주문했다. 나중에 다른 카페에 가서 물어보고 알게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에스프레소&카푸치노 세트 메뉴가 대만에서는 흔한 카페 문화 중에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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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에스프레소&카푸치노 세트, 더치커피 아이스


커피는 곧바로 서빙되었는데 깔끔한 모습으로 나왔다. 더치커피는 깨끗한 유리잔에 나왔으며 에스프레소&카푸치노 세트는 커피 잔 바닥 크기에 딱 맞는 나무 트레이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는 커피 색깔과 질감도 정갈했다. 에스프레소의 크레마는 밝은 갈색이었지만 부드러운 벨벳 같은 질감이었으며 카푸치노의 라떼아트도 나무랄 데 없었다.


눈으로 미리 예상했던 것처럼 커피 맛이 정말 좋았다.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커피의 단맛이 정말 뛰어났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면서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세트로 나온 커피들을 번갈아 마셨는데 카푸치노를 마시고 난 후에 에스프레소를 입에 머금고 있으니, 생딸기의 향미가 온 입안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뭐지?'라는 생각으로 몇 번을 번갈아가면서 마셔봤지만, 계속해서 비슷했다. 심지어 그때 함께 있었던 친구도 커피를 맛보면서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두 음료 간에 어떤 시너지가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때 카페가 조금만 덜 바빴더라면 그대로 잔을 들고 가서 바리스타에게 신나게 떠들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할 때 선물을 들고 다니게 된 계기


커피따라 세계일주 미국 편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카페를 다니면서 작은 선물을 건네곤 했다. 물론 당시에 바리스타들에게 요청했던 인터뷰에 대한 감사의 의미도 있었지만, 이날에 어떤 사람들에게 받았던 친절함이 여행을 갈 때 선물을 챙기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동물원에서 나와서 주위의 높은 언덕에 올라가면 좋은 전망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 걸어가 보기로 했다. 양옆으로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서 점점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종종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기도 하고, 음료와 생수를 파시는 아주머니를 지나치기도 하면서 1시간쯤 걸어 올라가니 좋은 경관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는데, 고생해서 올라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그 풍경에 감탄하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숙소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빠르게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을 가기 위해서는 약 40분을 걸어야 했다. 생각만 해도 막막했다. 그리고 올라왔던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방향마저도 헷갈렸다. 그렇게 지도를 보면서 이리저리 방향을 돌려가면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커플로 보이는 두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건네 온 것이다. 한눈에 관광객인걸 알았는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혹시 관광 오셨어요? 어디로 가나요?"


"아.. 네 지금 숙소에 가서 저녁을 먹으려고 해요. 지하철 역으로 가야 하는데, 천천히 걸어가려고 합니다."


"네?? 그 먼 곳을요? 꽤 오래 걸릴 텐데요. 우리가 어차피 그쪽으로 가는데, 괜찮으면 우리 차로 같이 가요."


"와! 그래도 괜찮을까요? 괜히 저희 때문에 더 멀리 가시는 게 아니에요??"



그 커플은 흔쾌히 지하철 역 가까운 데까지 데려다주겠다며 괜찮은지 물어봤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호의에 경계했지만, 선한 인상의 웃음 많은 커플의 매력에 결국 얻어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가면서 알게 된 그들은 곧 결혼할 사이였으며, 데이트하기가 좋아서 그곳에 자주 놀러 간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 먼 거리를 걸어갈 생각을 했냐며 우리 보고 대단하다고도 했다.


신나게 떠들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 도착할 때가 되었다. 그때부터 친구와 가방을 뒤져보면서 혹시 뭐라도 답례로 그 커플에게 줄만한 것이 없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침부터 많이 걸을 거라면서 가볍게 나가자고 했었고, 선물로 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물통과 현금과 카드, 여권 사본뿐이었다. 결국엔 차에서 내리면서 감사 인사를 건네고 꼭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그들도 뭔가를 바라고 친절을 베푼 것은 아니었겠지만 괜히 답례를 줄 것이 없었던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때부터였다. 다음에 여행을 갈 때는 꼭 감사를 표시할만한 작은 선물 같은 것 하나라도 준비해 가자고 다짐했다. 그 이후부터는 작은 카페나 음식점에 가더라도 친절한 웃음과 맛있는 음식, 음료들로 행복한 기억을 주는 곳을 가게 되면 팁과 함께 작은 선물을 건네기 시작했다. 항상 들고 다녀야 하는 수고로움과 약간의 경비가 들긴 했지만, 선물을 주면서 오히려 내가 큰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선물을 건넸던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여러분에게도 코로나가 끝난 후, 묵혀뒀던 여행을 떠나면서 작은 선물을 조금씩 준비해 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에게 나누면서 느끼는 행복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20180110_171537.jpg (c)만얼 | 1시간을 걸어 올라갔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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