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이 7. 요즘 엄마들에게서 나를 보다

8일째 날

by 하만다

“흠….”


간단한 아침 식사와 조깅을 하고 샤워까지 모두 마친 나는 밖을 나서기 전 배꼽 주변을 시계 방향으로 살살 문질렀다.

그리고는 과연 내가 오늘 점심에 먹고 싶은 메뉴가 무엇인지 가만히 집중해 봤다. 마치 살인 용의자를 밝혀 내는 유능한 탐정 셜록 홈즈처럼.


꾸룩 꾸루룩..


배를 너무 심하게 문질렀는지 위장 운동이 활발해졌다. 어서 뭐라도 넣어 달라고 성화다.


“아침도 먹었는데 왜 이래 진짜”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뱃속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아, 이건 그건데.. 그래, 확실히 그거야.”


의심을 갖고 있던 메뉴 선정에 뱃속 탐문을 끝낸 나는 확신을 얻고 오늘도 나의 외출 메이트인 전 회사 유물, 에코백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오픈 시간인 12시에 딱 맞춰 가게 앞에 도착했다. 약간의 민망함에 쭈뼛거리며 가게 미닫이 문을 열었다.


드르르륵


“안녕하세요.”


사장님 혼자 계시는 가게 안에 아직 손님은 없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오픈 시간보다 빨리 오는 손님은 없을 테니까.

유리문을 통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조그만 가게였다. 문틀과 문을 열고 들어 오면 정면에 보이는 카운터 뒤 벽은 청록색으로, 그 오른쪽 벽은 하얀색, 왼쪽 벽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나무로 된 바닥은 정렬의 빨간색으로 페인트 칠을 한 것 같았다. 화려한 색감에 경쾌함이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가게 안은 크고 작은 고양이 소품들은 꾸며져 있었다.


‘사장님이 고양이를 좋아하시나 보지?’


그러고 보니 가게 이름 <그릉, 그릉 파스타 가게>도 고양이 소리에서 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문쪽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무얼 먹을지 미리 메뉴판을 정독하고 왔던 터라 주문하는 데 고민할 건 없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카운터 옆에 비치된 메뉴판을 골똘히 쳐다보다(보는 척하다) 말했다.


가게 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유리문쪽 테이블(왼쪽)과 카운터(오른쪽)


벽에 걸려 있는 고양이 소품(왼쪽)과 그림들(오른쪽)


“흑돼지 크림 스튜 파스타 하나 주세요.”


주문과 계산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콧노래가 나오고 엄지발가락은 알 수 없는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이제는 음식만 기다리면 된다. 넘치는 욕심으로 요동치는 이놈의 위를 달래줄 수 있다.


얼마 안 있어 손님 둘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두터운 바지와 가디건 차림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무릎길이의 스커트에 니트를 입었다. 옷차림을 보니 관광객이 아닌 직장인인 것 같았다.


손님 둘은 진즉에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하기 위해 사라진 사장님이 언제 나오나 카운터 뒤편의 부엌을 고개를 길게 늘여 뜨리고 기웃기웃하고 있는데 사장님은 도통 부엌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불에 뭔가를 볶는 촤르르 소리와 웍이 가스레인지에 탁탁 부딪치는 소리만 부엌에서 새어 나왔다.


“사장님~”


참다못한 한 손님이 조심스레 사장님을 불렀다. 아마도 금쪽같은 점심시간 안에 여유 있게 식사를 마치려면 이제는 주문해야 한다는 마음에 더 기다릴 수 없었으리라. 아무렴. 그 맘 알고 말고.


“잠시 기다려 주시면 주문받겠습니다~!”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손님은 자리에 앉았다.


얼마 되지 않아 사장님은 두 손님으로부터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 내 음식도 나왔다.


파스타를 주문하면 아뮤즈즈부쉬부터 샐러드, 디저트까지 나오는 이 가게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흑돼지 크림 스튜 파스타(왼쪽)와 코코아 가루가 고양이 모양으로 올려진 티라미수(오른쪽)


두 명의 손님에 이어 또다시 두 명의 손님이 찾아들어왔다. 내 뒤 테이블에 앉은 이 두 남자 손님들도 가벼운 옷차림과 언뜻언뜻 들리는 대화들로 유추해 보건대 관광객이 아닌 근처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들 인 것 같았다. 요가원에서도 나 빼고는 모두 주민이라고 그랬었는데, 관광객보다 거주민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디저트는 고양이 모양으로 코코아 가루가 뿌려진 티라미수였다. 사장님 조언대로 티스푼을 그릇 아래까지 깊게 파 모든 레이어가 한 숟가락 안에 들어오게 했다.

입 안 가득 티라미수를 넣고 음미하고 있는데 요리하고 서빙하느라 바쁜 사장님을 보면서 약간은 궁금해진다.


사장님, 행복하신가요?


제주도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살고 싶다는 남자 친구의 꿈을 알기에 궁금했다. 어쩌면 나도 그 삶을 꿈꾸기에 더욱 궁금한 질문이었지만, 질문을 하는 대신 나는 티라미수 마지막 한 스푼을 호탕하게 입에 털어 넣고 바빠 보이는 사장님을 뒤로 한채 가게를 나왔다.




옆 동네 평대리에 가 보려고 마음먹었다. 제주에 와서 세화를 벗어난 첫 나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가깝기도 하고 운동도 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올레길을 따라 걸으면 세화 해변부터 평대 해변까지 20~30분 소요된다고 하니 밥 먹고 산책하기에는 딱인 것 같았다.


올레길 표시인 주황색과 파란색 띠를 이정표 삼아 걸었다. 해변을 벗어나 낮은 돌담이 가득한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밭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계시던 아저씨가 뭐라 뭐라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어폰을 빼고 물었다.


“네? 뭐라고요?”


“올레길 가느냐고요.”


“네, 맞아요! 평대 쪽으로 갑니다.”


“그럼 거기 아니고 이쪽으로 가야 해요.”


아저씨는 내가 들어선 골목이 아닌 아닌 좌측 골목길을 가리켰다.


‘분명 주황색, 파란색 띠를 봤는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뒷걸음치며 아저씨가 가리켰던 좌측 골목길을 빼꼼 쳐다봤다. 저 멀리 전봇대에 주황색, 파란색 띠가 나부끼고 있었다.


“앗, 길을 잘못 들었네요. 감사합니다!”


제주도에는 친절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길을 잃지 않고 빨리 제 길을 찾아서인지 아니면 음식과 음료 주문 이외에 가져보는 다른 종류의 대화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들뜬 마음이 들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고 바람도 강하지 않아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 처음 보는 길과 풍경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언제 봐도 반가운 올레길 표시, 주황색, 파란색 띠


당근밭과 무밭이 계속해서 이어지던 중 한 당근 밭에 사람들이 당근을 캐고 있었다. 한쪽에는 아주머니들이 일정한 가격으로 떨어져 앉아 당근을 캐고 계셨고 다른 한쪽에는 당근 그림과 커다랗게 구좌 당근이라고 적힌 박스가 이미 다 캔 당근을 가득 담은 것인지 검은색 끈으로 굳게 동여 매 있었다. 아무래도 구좌 당근이 유명하다 보니 제주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당근 밭이나 당근 캐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것이 당근 밭 한편에 떼고 있는 불이었다. 나는 향 피우는 냄새, 타는 냄새를 좋아해서 당근을 캐는 밭을 지나갈 때면 불 때는 큼큼한 탄 냄새와 주황색과 초록색이 조화롭게 물든 밭을 보며 기분 좋게 지나갔었다. 과연 이 불 때는 것의 역할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당근을 캐고 있는 사람들과 왼쪽 한편 피어오르는 연기


초콜릿으로만 먹어 보았던 백년초도 평대 가는 길에 발견했다. 이게 어떻게 초콜릿이 되는 것인지, 어떤 부분을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평대에 온 것 같았다. 평대 어촌계 건물이 평대에 도착했음을 알려 주었다. 탁 트인 평대 해변을 걷다 해변 끝 건물 벽에 물질을 마치고 햇볕에 말리려 걸어 놓은 듯한 잠수복과 어망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돌담 위에 옹기종기 난 백년초(왼쪽)와 평대어촌계(오른쪽)


햇빛을 쬐고 있는 해녀복과 어망


제주에 와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살고 있는 우리나라인데도 제주도에는 처음 보는 나무가, 처음 보는 꽃이, 처음 보는 색깔의 바다가 있다. 특히 바다는 매일 봐도 그 모습이 새롭다. 더 긴 기간을 제주에서 머물게 되면 이 풍경도 시들해질까? 아직까지는 답을 모르겠다.


평대 바다




평대 해변에서 골목길로 들어가 어디 갈 만한 곳이 없는지 이 집 저 집 기웃거리고 있는데 평대에 가면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북카페를 우연히 발견했다. 우연히 만나 더욱 반가웠다. 당근주스 한 잔을 시키고 카페에 앉아 창문 넘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제주에 있다는 것이 다시금 실감 났다.


평대 북카페 <달책빵>에서 당근주스 한 잔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속삭이듯 대화하는 소리와 음악만이 고요히 들려오는 카페에서 가만히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여자의 말소리가 조금씩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잖아. 지석아, 네가 엄마를 생각해서 처음부터 음식을 주고 싶었으면 먹기 전에 나눠 줬어야지.”


앞 뒤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먹던 음식을 자신에게 주자 아이에게 했다는 말 같았다.

이 말을 들으니 불현듯 몇 년 전 친한 언니한테서 들었던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매번 요거트 뚜껑을 따서 아이에게 주고 자신은 뚜껑에 묻은 요거트를 핥아먹었는데 (국룰이다) 어느 날 아이가 요거트 뚜껑을 엄마에게 주면서 “자, 엄마 꺼”라고 했다고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고 말하며 언니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었다.


자식에게 끝없는 사랑과 배려를 베푸는 엄마,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자식. 맞아, 그게 당연하지 않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배려하고 있다는 걸 아이에게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톡 메시지가 울렸다.


나 이제 짐 다 싸고 남편 기다리는 중!


중학교 때 수학 학원에서 만나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고 있는 미선이가 오늘 밤 제주도에 온다. 친구가 제주도 한 달 살이를 하고 있다니 알바와 육아 모두 휴가를 내고 2박 3일 놀러 오는 것이다. 금요일인 오늘 저녁 남편이 퇴근하면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곧장 청주공항으로 가 9시 30분 비행기를 타서 밤 12시가 넘어서야 세화에 도착할 터였다. 그런데도 친구는 오래간만의 해방에 들떠 자신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나에게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공항 간다. 나 떨려!


며칠 전 아이 훈육 문제로 남편과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남편의 한 마디가 친구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동생이 없는 아이가 불쌍하다고 말이다.


미선이는 26살, 요즘으로 치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한 지 일 년이 채 안되어 임신을 했는데 남편의 입김이 컸다. 미선이의 남편은 아이를 여럿 나아 안정적이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 미선이는 그렇게 딸 지나를 낳았고 이후 임신 후유증과 우울증이 심하게 와 이를 회복하는 데 꽤나 시간이 걸렸었다. 몸이 많이 붓고 아이 보느라 체력이 바닥났던 미선이, 또 우울하고 매사에 날이 선 반응을 보였던 그때의 미선이를 생각하면 둘째는 낳지 않는 게 본인을 위해서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선이도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내 인생에 둘째는 없다고 남편과 시댁에 여러 번 선언했지만, 여전히 방심하면 쳐들어오는 둘째 타령에 가슴에 화가 많은 듯했다.


어쨌든 얼마 전 그 논쟁에서 일종의 금기어가 된 ‘둘째’가 ‘동생’으로 겉모습만 둔갑한 채 남편 입에서 튀어나와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린 미선이었다. 남편과 아이가 잠든 그날 밤 혼자 술을 마셔도 해소되지 않던 가슴속 끊는 무언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미선이는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제주도에 다녀오겠다고. (나를 보러 오겠다는 거였는데, 이때까지 나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어렴풋이 이해되는 미선이가 처한 상황이 옆 테이블의 대화와 몇 해 전 친한 언니가 해주었던 이야기와 함께 오버랩되었다.


요즘 육아와 여자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대학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때웠던 치아에 문제가 생겨 급하게 회사 조퇴를 하고 치과를 가는 중인데 말동무 찾아 내게 전화한 것이다.


“나 진심으로 네가 부러워.”


친구는 대뜸 내게 말했다. 제주도로 홀로 떠나 있는 내가 부럽다고 말이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회사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심지어 이 시국에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나와 가정을 지켜 내는 것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스트레스를 요하는 것인지 그녀는 울분을 토하며 말했고, 마지막으로 지금의 심정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매일 이어지는 시험기간


그 순간 머릿속에서 피상적으로만 느껴졌던 친구의 삶이, 미선이의 상황이, 친한 언니의 씁쓸한 미소가, 그리고 옆 테이블의 대화가 내게 온몸으로 다가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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