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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Apr 14. 2023

사랑의 다른 말

진은영의 시 〈청혼〉

지난 생일에 시집을 선물 받았다. 놀라지는 않았다. 약속된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가 책을 선물해주겠다기에 나는 원하는 시집을 말했고, 선물 받은 뒤로는 가까운 곳에 두고 자주 펼쳐 보고 있다. 첫 시부터 마음이 넘어져 버렸는데 이번에도 놀라지는 않았다. 아는 시였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청혼도 있다는 것을 내게 알려준, 진은영 시인의 시. 여기에 적는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진은영 〈청혼〉* 전문.     


이 시가 담긴 시집은 2022년에 출간됐다. 시를 문예지에 발표한 건 그보다 전인 2014년이라고 한다. 집 없는 8년 동안에도 이 시는 유명했고 나도 시집이 나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시 앞에서 또 조금 울고 말았다. 아름답고 진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같은 이유로 아직 이 시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가져왔다. 길지 않으므로 한 연씩 함께 읽어 보자.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시는 시작부터 사랑을 고백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면, ‘오래된 거리처럼’ 사랑한단다. 무슨 뜻일까. ‘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오래된 거리’를 사랑하듯 ‘너’를 사랑한다는 것인가. ‘너’를 사랑하는 ‘오래된 거리’처럼 ‘나’도 ‘너’를 사랑한다는 것인가. 이것은 딴지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드디어 ‘나’가 오래 사랑해온 ‘너’에게 청혼을 한다는 것. 이를 지켜보는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린다. 아름답고 소란한 광경 안에서 ‘나’는 말을 잇는다.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비를 주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면 이 말은 사랑에 취한 이의 과장일까.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니 다음 행을 보자.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는단다. 과거와 미래는 시간이며, 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의 합이다. 그러므로 인생이나 운명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테다. 그런데 ‘나’는 우리 앞에 펼쳐질 인생과 운명에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아첨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아첨은 바라는 게 있는 사람만이 하는 일. 바꿔 말한다면 ‘나’는, 우리의 사랑 앞에서 인생이나 운명에 바라는 것이 없다는 의미이리라. 왜 없을까. 그것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만난 ‘비’와 마찬가지로. 그러므로 ‘나’가 한 말은, 어쩔 수 없는 것(외부의 일)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사소하고 아름다운 현상을 함께 바라보자는 의미가 아닐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이 맹세는 가장 순결하고도 진실해 보인다.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시절’에 거짓이나 불결을 씻어내는 ‘비누 거품’ 속에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다시, 인생과 운명)에 의해 조금은 잊힌 맹세일 것이다. 그것을 찾아 ‘너’의 팔에 적어주는 마음은 아름답다. 아름다운데 융숭하기까지 한 건 다음에 이어진 ‘나’의 맹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자신을 찾느라 ‘너’에게 신경 쓰지 못한 과거를 만회하려고 한다. 시간을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잊고 지낸 약속과 목표를 찾아 팔에 적어주고, 남은 시간을 준다는 것. 우리의 맹세를 함께 이뤄가자는, 과거로부터 발굴한 미래의 약속이리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이윽고 돌아온 소란. 소리로 다가오던 소란(‘별들은 벌들처럼’)이 이번엔 시선(‘벌들은 별들처럼’)으로 다가온다.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는 광경은 원래 이럴까. 별들이 소리 내고 벌들이 반짝일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마지막 연을 들려드리고 싶다. 마지막 연을 통해 이 시는 아름답기만 한 시가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현실보다 더 진실하게 현실을 말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가 된다. 청혼의 마지막이라면 누구보다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변치 않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편이 가장 진실해 보일 테니까. 그러나 시 속의 ‘나’의 청혼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앞두고 끝난다. ‘너의 슬픔’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행동.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사랑에 빠지면 세상은 온통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인류나 우주도 작아진다. 한 사람을 위해 산다. 내가 사랑하는. 여기까지는 특별하지 않아 보인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쓴잔’이리라. 그 잔 안에는 ‘투명한 유리조각’처럼 ‘슬픔’이 담겨 있다. 누구의 슬픔인가. 앞서 ‘한 여자(너)’를 말했으니 그의 것일 테다. 그러니까 ‘나’는 청혼의 마무리로 ‘너’의 슬픔을 마시려고 한다. 그것을 마시면 ‘너’의 슬픔은 우리의 슬픔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슬픔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것은 결혼 혹은 사랑의 본질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거리가 오래된 거리가 될 때까지, 그러니까 평생 사랑하겠다는 약속 안에는 사랑이나 기쁨만 존재할 리 없다. 현실에는 그보다 너저분한 것들이 많고, 그중에는 슬픔도 있다. 슬픔은 가장 중요하다. 결속을 결정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같은 슬픔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행위로써 함께 슬퍼하지 못하면 사랑을 나누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사랑을 약속하려면 슬픔도 약속해야 한다. 아니, 애초에 둘은 한 몸인지도 모른다. 슬픔은 사랑의 다른 말이다.


          

어느덧 사월이다. 나는 사월이야말로 사랑을 청하는 일이 어울리는 달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헤퍼도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우리, 청혼(請婚)으로든 청혼(請魂)으로든 더 많이 사랑하자. 혼자 사랑하는 이 없도록 함께 사랑하자. 여기서도 사랑은, 다른 말로 바꿔도 된다. 


(2023. 04. 14.)

(@dltoqur__)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에 수록(진은영, 2022,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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