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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Jul 11. 2023

당연한 진실을 공부하는 이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전문.


 벌써 칠월이다. 시간이 어쩌나 빠른지 여기저기 보이던 ‘상반기 결산’조차 끝난 듯하다. 이런 시기마다 반복해 겪는 기분이 있다. 올해도 절반조차 남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기분. 그러니까 인생을 낭비한 기분. 반성 대신 기분 탓을 해본다. 마음이 잠시 편해진다. 하나 달력을 볼 때마다 불편한 질문에 체한다. 왜 시간을 살뜰히 여기지 않았는가. 자책하는 순간 다가오는 시가 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 워낙 유명한 시이니 소개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의미가 명징하니 해석도 불필요하리라. 대신 개인적인 시의 쓰임을 적어 보겠다.


 인간은 시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이처럼 커다란 질문에 답할 역량은 내게 없다. 간신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살다 보면 불현듯, 시가 내게 다가온다는 것 정도. 쉼보르스카의 이 시도 이따금 내게 온다. 언제? 서툰 하루를 보냈을 때. 그때 이 시를 만나면 위안을 느낀다. 인생에 연습이 없다는 공평함을 실감하기 때문이리라. 또 평화롭고 지루한 날들이 이어질 때도 이 시가 온다. 그럴 때는 길가의 풀처럼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므로 생을 긍정하게 된다. 처음 말한 대로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난 뒤에도 시는 나를 방문한다. 한 손에 질문을 들고서.


 훌륭한 시가 모두 그렇듯 시에 담긴 질문은 한 가지일 리 없다. 사람마다 다르게 들릴 터인데, 나는 이렇게 들렸다, ‘어떻게 살 것인가.’ 시에 쓰인 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사라짐으로써 아름다워진다면. 그것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생의 소임은 충분할지 모른다. 다만 결말은 오지 않았고, 기다림에 매여 살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내가 사는 이곳이 연옥이 돼 버릴 테니까. 살아 있는 한 살아가야 한다. 어떻게? 두 번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인생의 모든 순간이 유일하다는 뻔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여기 있다. 부끄럽게도 나는 모른다.


 순간의 소중함을 운운한 적 많지만, 항상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읽거나 쓰거나 생각할 때를 빼면 대부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러므로 나에게 이 시를 종종 들려준다. 당면한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당연한 진실을 계속, 공부하는 것이다. 인생에 두 번은 없다지만, 배움에는 두 번이 있다.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무한히 반복해도 부족하리라. 자꾸 잊기 때문이다. 아무리 들려준들 내일이면 잊게 될 테지만 그래도 들려준다. 들을 때만이라도 기억하려고. 그 순간만이라도 아는 채로 살길 희망한다. 왜? 깨어 있고 싶어서다.


 순간을 잠결처럼 보내다 잃은 것이 많다. 귀함을 모른 체 시간 따라 흘려버린 것들. 요컨대 사람과 사랑과 숱한 기회들. 그중에는 마지막인 줄 모르고 떠나보낸 이도 있고, 영원할 줄 알고서 함부로 대한 존재도 있다. 다음이 있다는 희망이 때로 절망의 씨앗이 된다는 사실은 깨어 있지 않고는 알지 못 하리라. 시간이 갈수록 가슴에 사무치는 것들을 매번 처음처럼 기억하는 일은 괴롭다. 괴롭지 않으려고 이 시를 읽는다. 읽어서 나를 깨운다. 카프카식으로 말하자면 이 시는 순간 앞에 선 나의 무지와 미숙과 어리석음을 깨는 도끼이다. 나는 이 시를 이렇게 쓴다.


(2023. 07. 11.)

(@dltoqur__)




*《끝과 시작》(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저, 최성은 역, 2016, 문학과지성사, 개정판)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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