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바이벌 가이드
서울 강남의 한 여섯 평짜리 원룸에서 서른한 살 젊은이가 차갑게 식은 채 발견됐어. 150장의 이력서 다발과 함께. 그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 있었고, 관리비는 3개월이나 밀려 있었지. 언론에 알려지기로는 그 청년은 직장을 잡으려고 지방에서 올라와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지만 최근에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일자리를 잃었다고 해. 그에겐 갈 곳도,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어. 경찰에 연락을 받고 서울로 올라온 부모는 아들이 이렇게 된 게 다 가난한 부모를 만난 탓이라며 눈물을 흘렸어.
상경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져. 부모의 기대가 있고, 걱정하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또 대부분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올라온 경우가 많아. 자리를 잡기까지 가족의 도움이 있거나 자기가 서울로 오면서 형제자매 중 다른 누군가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들도 있을 수 있어.
그런 상황에서는 나를 서울에 보내준 부모님을 위해 자랑거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성공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고향은 큰 부담이 되지. 자동차 광고 하나가 화제가 된 적이 있어. 과거 성공한 사장님들이 타는, 그래서 부의 상징인 그랜저를 타고 시골 고향집에 내려가자 어머니가 자식이 성공했다며 기뻐하는 장면. 아마 그건 부모의 마음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내려가고 싶어하는 자녀들의 마음(욕망)을 대변하는 것 같아.
효도를 하고 싶다는 건 때때로 강렬해. 아주 강력한 충동 같은 거야. 어머니의 힘 빠진 목소리를 전화로 들을 때, 매달 보내주는 금액을 볼 때, 티비에서 어떤 장면을 볼 때 등등…… 이런 순간의 효심은 미안하면서 보고싶고 서럽기도 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합적인 감정이야.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을 기억하지 마. 반대로 기대에 차 있는 그들의 눈빛도. ‘금의환향’이란 말을 현실에서 풀어낸, 성공을 보여주는 미래를 눈앞에 보는 환상에 빠지는 것도 스스로 경계해야 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효도 충동’에 사로잡혀 있을 때 어떤 실패를 하게 된다면 오로지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스스로를 혹사하게 된다는 거야. 우리는 부모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져. 부모는 늙어가고, 우리를 기다려줄 수 없는 반면에 우리가 도달할 목표는 멀게만 느껴지고, 실제로 도 아득히 멀기 때문이지. 그 두 간극 사이에서 서로 다른 감정들이 충돌하면서 우리는 비애를 느껴. 그 마음이 너를 괴롭혀서는 안 될 거야.
“그래도 누나, 너무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지만 마.”
“그런 거 아냐.”
“너무 효도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황정은, 〈파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