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외국어 교육에 대한 새빨간 거짓말
조기 외국어 교육이 가열되다 못해 이제는 태교도 외국어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심으로 걱정되는 사회 현상이다. 어릴 때 외국어에 노출되어야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그런 주장은 누가 한 것일까? 나는 교육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계, 특히 유아교육계에서는 어떤 근거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언어학자로써 바라봤을 때, 이런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국어를 배우기에 최적화된 시기라는 것은 없다. 게다가 그 최적화된 시기가 어린 시절이라는 학문적 주장들도 이미 여러 가지 실험에 의해 뒤집힌 지 오래이다 (반박 연구를 시작한 Standford의 Hakuta Kenji나 York 대학의 Ellen Bialystok 참고). 조기 외국어 교육에 대한 맹목적 신봉은 내가 보기에는 두 가지 근거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첫 번째 근거는, 언어학을 배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촘스키, 그분이 말씀하셨다. 외국어를 배우기에 제일 좋은 시기, 즉 결정적 시기 (Critical period)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사실 촘스키는 물론 범접할 수 없는 대단한 언어학자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Critical Period에 대한 주장은 이후 많은 후학들에 의해서 공격당했다. 사실 그는 formal linguist, 즉 이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문장, 표현 같은 것을 연구하는 학자인데 언어 습득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응용언어학적인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반박 주장을 한 사람들은 주로 인간의 뇌에서 그 증거/근거를 찾는 심리 언어학자들이었다. 특히 Hakuta와 Bialystok이라는 아주 아주 유명한 심리학자 두 명의 공동연구에서는 결정적 시기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아주 보기 쉽게 증명해 냈다. 요는 만약 결정적 시기가 존재한다면, 그 시기 내에 외국어를 배운 사람과 그 시기가 끝나는 순간이 지난 후에 외국어를 배운 사람들 사이에 습득의 결과가 많이 달라야 하는데, 사실 차이가 없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더 자세히 읽어 보시길...
Hakuta, K. & Bialystok, E. (2003). Critical evidence: A test of the critical-period hypothesis for second-language acquisition. Psychological Science, 14(1), 31-38. doi:10.1111/1467-9280.01415
두 번째 근거는 발음 때문인 듯하다. 나이가 어린 학습자들이 성인 학습자에 비해서 유일하게 혜택을 받는 부분은 발음이다. 이것은 우리의 청각 능력 때문인데, 인간은 생후 1년이 지나면 새로운 소리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이것은 인간의 진화에 의해 발달된 능력인데, 새로운 소리를 인지하고 구분하는 능력은 인지적 능력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라서 두뇌는 생후 1년 동안 못 들어본 소리는 더 이상 알아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이런 소리 구분 능력을 스스로 퇴화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두뇌가 다른 인지적 활동을 위해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에 드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세이브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 학습자는 아무래도 발음 습득에는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발음은 언어 습득의 한 부분일 뿐 이것 때문에 꼭 어렸을 때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면, 단어, 문장 구조, 사회 언어학적 능력을 습득하기에는 성인 학습자가 훨씬 유리하고, 훨씬 빠르게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이 배우는 외국어의 수준을 생각해 보라. 과일, 사과, 장난감, 사람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주제만을 다룬다. 문장 수준 또한 단문이나 간단한 복문에 그친다. 반면 성인 학습자들은 추상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외국어 단어 (예: 기대하다, 실망하다, 비난하다... 등등)를 배울 때에도 쉽게 그 콘셉트를 이해할 수 있다. 또만 문법 규칙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이해는 금세 할 수 있다.
한국인이 유아기에 배우는 한글은 몇 달이 걸리지만, 성인 외국인이 한글을 배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3-4시간이면 뽕을 뽑는다. 게다가 맞춤법도 한국인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보다 훨씬 쉽게 습득한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친 학생 중에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한국어를 시작해서 이후 3년 동안 한국어를 배운 후 지금은 싱가포르에 온 한국인 배우, 가수들의 팬미팅, 콘서트 등에서 동시통역을 하는 학생이 있다.
나의 글 '외국어와 국어'에서도 말한 적이 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세계를 보는 시선과 의미를 구축하는 것인데, 단순히 어떤 언어 기능을 배우는 것으로 자꾸 좁혀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정도 언어 기술을 구사하는 건 구글 translator도 어느 정도 해 줄 수 있고, 이 기술은 빠르게 발전할 거라 생각한다. 결국은 내 나라 말로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외국어는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구축한 나의 세계에 녹아들기 훨씬 쉬울 것이다. 내 나라 말로도 볼 수 없는 세계를 외국어를 어릴 때부터 배운다고 볼 수 있을까?
난 우리나라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정말 감사하는 사람이다. 자국 내 작가가 창작하지 않고, 서점에 죄다 번역서만 있는 나라를 나는 수도 없이 보았다. 그런 나라의 시민들은, 미안한 말이지만, 깊이나 철학이 없다. 아마 그럴 기회를 잃어버려서겠지. 싱가포르 사람들이 전달할 수 있는 사고의 다양성은 한국 사람들이 전달할 수 있는 사고의 다양성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그리고 조기 외국어 교육이 아닌 한국어로 다양한 세계를 접하게 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결국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