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 and Aug 31. 2020

아직도 조기 외국어 교육이 도움이 된다고 믿으시나요?

조기 외국어 교육에 대한 새빨간 거짓말

조기 외국어 교육이 가열되다 못해 이제는 태교도 외국어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심으로 걱정되는 사회 현상이다. 어릴 때 외국어에 노출되어야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그런 주장은 누가 한 것일까? 나는 교육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계, 특히 유아교육계에서는 어떤 근거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언어학자로써 바라봤을 때, 이런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국어를 배우기에 최적화된 시기라는 것은 없다. 게다가 그 최적화된 시기가 어린 시절이라는 학문적 주장들도 이미 여러 가지 실험에 의해 뒤집힌 지 오래이다 (반박 연구를 시작한 Standford의 Hakuta Kenji나 York 대학의 Ellen Bialystok 참고). 조기 외국어 교육에 대한 맹목적 신봉은 내가 보기에는 두 가지 근거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첫 번째 근거는, 언어학을 배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촘스키, 그분이 말씀하셨다. 외국어를 배우기에 제일 좋은 시기, 즉 결정적 시기 (Critical period)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사실 촘스키는 물론 범접할 수 없는 대단한 언어학자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Critical Period에 대한 주장은 이후 많은 후학들에 의해서 공격당했다. 사실 그는 formal linguist, 즉 이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문장, 표현 같은 것을 연구하는 학자인데 언어 습득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응용언어학적인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반박 주장을 한 사람들은 주로 인간의 뇌에서 그 증거/근거를 찾는 심리 언어학자들이었다. 특히 Hakuta와 Bialystok이라는 아주 아주 유명한 심리학자 두 명의 공동연구에서는 결정적 시기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아주 보기 쉽게 증명해 냈다. 요는 만약 결정적 시기가 존재한다면, 그 시기 내에 외국어를 배운 사람과 그 시기가 끝나는 순간이 지난 후에 외국어를 배운 사람들 사이에 습득의 결과가 많이 달라야 하는데, 사실 차이가 없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더 자세히 읽어 보시길...


Hakuta, K. & Bialystok, E. (2003). Critical evidence: A test of the critical-period hypothesis for second-language acquisition. Psychological Science, 14(1), 31-38. doi:10.1111/1467-9280.01415


두 번째 근거는 발음 때문인 듯하다. 나이가 어린 학습자들이 성인 학습자에 비해서 유일하게 혜택을 받는 부분은 발음이다. 이것은 우리의 청각 능력 때문인데, 인간은 생후 1년이 지나면 새로운 소리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이것은 인간의 진화에 의해 발달된 능력인데, 새로운 소리를 인지하고 구분하는 능력은 인지적 능력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라서 두뇌는 생후 1년 동안 못 들어본 소리는 더 이상 알아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이런 소리 구분 능력을 스스로 퇴화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두뇌가 다른 인지적 활동을 위해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에 드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세이브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 학습자는 아무래도 발음 습득에는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발음은 언어 습득의 한 부분일 뿐 이것 때문에 꼭 어렸을 때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면, 단어, 문장 구조, 사회 언어학적 능력을 습득하기에는 성인 학습자가 훨씬 유리하고, 훨씬 빠르게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이 배우는 외국어의 수준을 생각해 보라. 과일, 사과, 장난감, 사람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주제만을 다룬다. 문장 수준 또한 단문이나 간단한 복문에 그친다. 반면 성인 학습자들은 추상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외국어 단어 (예: 기대하다, 실망하다, 비난하다... 등등)를 배울 때에도 쉽게 그 콘셉트를 이해할 수 있다. 또만 문법 규칙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이해는 금세 할 수 있다.


한국인이 유아기에 배우는 한글은 몇 달이 걸리지만, 성인 외국인이 한글을 배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3-4시간이면 뽕을 뽑는다. 게다가 맞춤법도 한국인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보다 훨씬 쉽게 습득한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친 학생 중에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한국어를 시작해서 이후 3년 동안 한국어를 배운 후 지금은 싱가포르에 온 한국인 배우, 가수들의 팬미팅, 콘서트 등에서 동시통역을 하는 학생이 있다.


나의 글 '외국어와 국어'에서도 말한 적이 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세계를 보는 시선과 의미를 구축하는 것인데, 단순히 어떤 언어 기능을 배우는 것으로 자꾸 좁혀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정도 언어 기술을 구사하는 건 구글 translator도 어느 정도 해 줄 수 있고, 이 기술은 빠르게 발전할 거라 생각한다. 결국은 내 나라 말로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외국어는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구축한 나의 세계에 녹아들기 훨씬 쉬울 것이다. 내 나라 말로도 볼 수 없는 세계를 외국어를 어릴 때부터 배운다고 볼 수 있을까?

난 우리나라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정말 감사하는 사람이다. 자국 내 작가가 창작하지 않고, 서점에 죄다 번역서만 있는 나라를 나는 수도 없이 보았다. 그런 나라의 시민들은, 미안한 말이지만, 깊이나 철학이 없다. 아마 그럴 기회를 잃어버려서겠지. 싱가포르 사람들이 전달할 수 있는 사고의 다양성은 한국 사람들이 전달할 수 있는 사고의 다양성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그리고 조기 외국어 교육이 아닌 한국어로 다양한 세계를 접하게 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결국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주장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온라인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