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된 아기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산후 우울 증세로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남편은 그런 내 상태가 염려되어 뭐라도 좋으니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오라고 부추겼다. 100일도 되지 않은 아기를 집에 두고 나가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편이 나 없이 아기를 잘 돌볼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다. 아기 젖 먹는 시간, 기저귀 가는 시간, 달래는 방법을 거듭 일러주며 무거운 발걸음을 밖으로 옮겼다.
그렇게 나오고 싶던 바깥인데 막상 나오니 어디로 가야 할지, 무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작 한 달 사회생활을 안 했을 뿐인데,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 같았다. 나만 두고 계절도, 사람도, 시대로 다 변해버린 듯했다.
대학생 때부터 힘들 때면 늘 찾던 곳이 서점이었다. 지도 앱을 켜고 근처 서점을 검색하고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불어오는 바람도 낯설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을 맞았다. 상쾌했다. 잠시 잊고 있던 나라는 사람이 깨어나고 있었다. 운동도 하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었다. 갑자기 신나는 미래를 그리고 있는 나였다.
서점에 도착해서 새로 나온 책 코너로 가 눈에 띄는 서너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읽는 활자였다. 작가의 상상력과 경험이 담긴 이야기를 읽으니 메말랐던 마음에 습기가 스며들었다. 행복했다. 잊고 있던 감정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행복감, 즐거움. 별 거 아니지만 좋아하는 행위를 할 때 느끼는 신남. 몰입해서 얼마간 책을 읽었을까.
자꾸 핸드폰 메신저를 확인했다. 남편에게 온 연락이 없나 신경이 쓰였다. 아기는 잘 있나, 궁금했다. 엄마 없이 둘이 잘하고 있나 걱정됐다. 결국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걱정 말라고, 잘 있으니까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천천히 들어오라고 말했다. 안심하라는 듯이 잘 자고 있는 아기 사진을 보내줬다.
책에 머물던 눈이 핸드폰 속 아기 얼굴로 향했다. 불현듯 마음이 시큰거리며 아팠다. 불편했다. 이상하다.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왜지. 10개월 동안 사랑과 절제로 내 몸 안에 품었고, 또 낳았는데 왜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지? 왜 이렇게 서점에 나와서 즐거웠던 마음이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옮겨졌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더 메여있지 못해서 미안한 거야? 24시간 아기에게만 붙어있을 수 없는 거잖아. 갑자기 영화도 보고 싶지 않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당장 집으로 가서 아기를 돌봐야 할 것 같았다.
분명 남편이 아기를 잘 돌보고 있는데, 왜 이런 불안감이 든 걸까. 도대체 아기와 엄마는 어떤 관계일까. 나는 아기에게 어디까지 해줄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해주면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동시에 나 자신이 우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갓난아기를 집에 두고 외출하는 엄마는 왜 죄짓는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걸까. 나는 죄를 지은 걸까. 아빠도 이런 기분을 똑같이 느낄까. 혼란스러운 마음에 자꾸만 질문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답을 가지고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