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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Sep 01. 2024

한 숨 돌리다

- 내 온 몸을 돌아다니던 통증의 원인으로 피가 부족해서, 속이 차서, 자율 신경계가 고장나서 라는 이야기를 하나 하나 수집하게 된 후 나는 몸에 관련된 우리 말 표현들이 얼마나 절묘한지 감탄하게 되었다.


피가 뜨겁게 끓었던 때 그 열정으로 피는 끓다못해 졸여져서 난 피가 모자라다는 얘기를 듣게 된건지도 모르겠다. 속이 상할 일은 넘치고 넘쳐 이제는 속 편한 얘기만 듣고 싶고, 속을 든든하고 따뜻하게 하는 음식만 찾게 된건지도 모르겠다.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신경은 날카롭고 예민한게 초기값이 되어 스스로 잠잠해지는 법을 잊은건지도 모르겠다.


피는 끓고 속은 상하고 신경은 날카로운 이 모든 표현들은 익숙한데 반해, 머리가 아프고 뒷목이 당기고 발바닥에 땀이 나는 표현은 나와는 먼듯 느껴지는 걸 난 다행으로 여겨야할까.


- 자기 전에 10분 정도 명상을 한다.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나의 몸을 인식하는 일. 내 몸과 마음을 지금 이 곳으로 데려와 내 피를 뜨겁게 하고 온 신경을 쓰게 만들고 실패하면 속이 상하게 될 어떤 '일'보다 사실은 여기서 숨쉬고 있는 나의 몸이 더 중요함을 인식하는 일. 부디 명상이 나를 아프게 하는 날카로운 나를 누그려뜨려주길 바라며 깊은 숨을 쉰다. 가끔 가쁜 숨을 내쉬며 하루를 보내고 잠들기 전, 내일이면 또 해내야할 일들이 부담스레 느껴질 때면 '괜찮아, 일단 숨부터 쉬자! 괜찮아, 그래도 이것만 지나면 또 한 숨 돌릴 수 있어!' 라고 나를 다독일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숨을 돌린다는 표현도 어찌나 절묘한지.


 © 캐시미어 힐, 2024 Mandy. All rights reserved.


이번 학기 잠깐의 브레이크를 맞아 한 숨 돌리러 캐시미어 힐을 올랐다. 숨이 가쁘게 걸어 올라간 언덕 위에서 크라이스처치 풍경을 바라보면 내 하루의 걱정들이 얼마나 작은 것들인지 이 풍경이 보여주는 듯 하다. 오늘 밤은 깊은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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