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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네 Choi Jul 17. 2024

여전히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어느 날 아침, 일어나면서부터 허리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더니 모든 정신을 아스라이 빨아 당길 정도의 극한 통증으로 변했습니다. 이번 병명은 허리디스크. 한동안 누운 채로 밤낮 끙끙거리고 있다 보니 시간이 너무나 더디게 흘렀습니다. 어찌나 아프던지, 두 번이나 출산을 경험한 아내에게 출산하는 것보다 더 아프다는 망언까지도 서슴없이 나오더군요.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드니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마냥 우울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아프면 아픈 대로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했습니다. 통증이 잦아들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책에 밑줄을 치려다 보면 중력 때문에 볼펜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펜을 탁탁 털며, "허리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라고 되뇌었습니다.


가진 것을 잃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실은 힘이 빠지고 암울해지는 경험이죠.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여전히, 그것도 아주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 어떤 일에든 이면이 있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헬렌켈러의 말처럼, 세상이 문을 닫아버리면 또 다른 문을 찾아서 그 문을 열면 그만입니다.


얼마 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폴 알렉산더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 동안 전신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폴은 온몸을 감싸는 커다란 보조 장치 속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기어이 해냈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대학을 졸업했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입으로 막대를 물고 키보드를 하나하나 눌러가며 책도 써냈지요.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대학생 시절의 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닉 부이치치도 생각났습니다. 당시 팔다리가 없는 닉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포옹해 주는 모습에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삶을 살고 있더군요. 행복해 보였습니다. 물론 그런 그도 팔다리가 없는 현실만을 바라볼 때 좌절했습니다. 어린 시절 몇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냈습니다. 닫힌 문에 미련을 두지 않고 자신이 열 수 있는 또 다른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간 것이겠죠.


당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압수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이 당연한 것들 덕분에 인생은 참 희망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 동안 경험한 일들 중 부정적이라고 여기는 일들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지하철이 온다든가, 엘리베이터 문 닫힘 버튼을 눌렀을 때 문이 닫힌다든가 하는 일상을 채우는 작은 일들은 당연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덕분에 우리는 뜻대로 되지 않는 한 두 가지 일에 대해 고민하고 불평하고 낙담할 충분한 정신적 에너지와 시간을 확보하게 됩니다. 만약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 문이 고장 나서 엘리베이터에 그대로 갇혀버렸다면, 그래서 중요한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입니다. 일상처럼 열리고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조차도 고맙게 느껴집니다.


오늘 있었던 100가지의 일들 중에 겨우 두세 가지가 우리의 마음을 괴롭힌다고 한다면, 반대로 90가지 이상의 절대다수가 우리의 삶을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나머지 90여 개의 성공적인 일들 덕분에 당신의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희망적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지나친 90여 가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 한 개 정도는 반드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저는 '될 수밖에 없는 이유'란 말을 좋아합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 뒤에는 늘 이유가 붙죠. 그래서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지금, 굳이 무수히 많은 '안 되는 이유'들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안 되는 이유들은 희망을 사치라 느끼게 만들고, 어떤 자격을 갖춰야만 희망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들어버립니다. 희망은 그렇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집중하세요.  90여 가지의 안 되는 이유들이 있더라도 단 몇 가지, 아니 단 하나의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희망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단 하나의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것이 수십 가지의 안 되는 이유를 찾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 이유가 '그냥 난 그게 정말 하고 싶으니까'여도 괜찮습니다. 희망은 일단 그런 것이니까요. '언젠가는', '어떻게든'과 같은 막연한 단어들조차도 결국엔 두 손에 만져지는 현실로 만들어버릴 만큼 희망의 힘은 강력합니다.


희망이라는 달달한 단어가 당신의 입가에 느껴지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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