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이사 오면서 많은 시간 나는 백수로 지내왔다. 나의 일들은 개들을 보살피는 일이 전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출퇴근을 하는 규칙적인 생활로부터 멀어졌다. 그리고 개들의 생활 패턴을 따라 생활하게 되었다. 그들은 다행히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이 드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일과 중에 치명적인 시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시도 때도 없는 낮잠이었다.
너무 뚱뚱해서 작아져 버린 쿠션에서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연신 상글벙글하다. 나는 낙천적인 해복이가 마음에 쏙 든다.
내 침대 위에서 보드라운 털북숭이들이 숨을 나직하게 쉬면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옆에 눕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든다. 이런 변명 같지 않은 변명으로 나도 자연스럽게 낮잠을 자게 되었고 이런 낮잠은 어느새 빼놓을 수 없는 달콤한 시간이 되었다. 애들이 실컷 놀고 장난치다가 내 곁으로 하나 둘 몰려와 이불에 코를 묻고 잠이 드는 시간은 나도 아이들에게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하루의 일과였다.
내가 홀에서 할 일이 있어 방으로 안 갔더니 모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잠이 들어버렸다. 아이들을 깨우기 싫어서 조용조용 일을 봤던 것이 생각난다.
그런 나에게 일거리가 몰아치면서 그 일들을 해내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람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무엇보다도 잠을 줄이고 일을 하는 시간을 늘려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이들이 모두 낮잠을 자는 시간에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낮잠을 줄이고 좀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로 다짐했다.
산책 시간은 언제나 좋다. 이른 아침에도 늦은 오후에도 산책길은 언제나 아이들과 같이 거닐기 좋다.
나는 규칙적인 삶을 위해서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아이들과 산책 후 아이들 먼저 아침밥을 먹이고 나는 그다음에 밥을 먹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서 아이들은 침대로 나는 책상으로 향한다. 점심때까지 글을 쓰고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마당에서 맑은 공기와 햇살을 즐기며 같이 신나게 논다. 아침에 일을 해놓은 탓에 마음 놓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다. 그리고 우르르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4시 반까지 글을 쓰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집에 들어와 엄마 일을 돕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길냥이들 밥을 주러 나선다. 10시경에 방에 들어와 아이들이 하나둘씩 잠이 들면 나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아이들 곁으로 파고든다. 부드러운 이불 감촉과 아이들의 체온이 나의 숙면을 도와준다.
점심 이후에 아이들과 햇살을 맞으며 광합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점점 무더워져서 시간대를 바꿔야 하겠지만 이 시간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꼭 필요한 시간이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나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해졌다. 규칙적인 삶을 살기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5시에 일어나 5-6시간 정도 글을 쓰고 오후에는 10킬로미터 조깅을 하거나 1500미터 수영으로 체력을 단련한다. 저녁에는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듣다가 9시에 잠이 드는 패턴을 매일매일 반복한다고 한다. 이런 규칙적인 생활은 다소 지루해 보일 수도 있으나 일하는 근육을 키우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같은 패턴대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몸이 적응해서 집중도 잘되고 일의 효율도 높아진다.
아기 강아지 오 형제가 나란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밖은 무섭다며 항상 내방 주위에만 있는다.
작업하다 눈 꼭 감고 자는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들 훔쳐보기, 코 고는 소리 듣기, 요거트에 메이플 시럽 넣어 먹기, 작업할 때 홀짝거리고 마시는 딸기쥬스, 막 내린 드립 커피의 향 등 규칙적인 삶 속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행복은 무궁무진하다. 꼭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나는 내 삶이 하루하루가 주는 행복에 만족하는 지금이 좋다. ‘일을 완성하는 데에는, 재능과 기량보다도 시간에 의한 숙성을 믿으며 끊임없이 걸어가는 인내의 기질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라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처럼 나는 오늘도 오늘을 오롯이 즐기며 한 걸음씩 나아갈 생각이다.
편백이가 산책하다 너무 기분이 좋아 드러누워 버렸다. 편백이는 기분이 좋으면 곧잘 드러누워 만져달라고 나를 쳐다본다. 사랑스런 편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