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아직도 철모르는 결혼을 꿈꾸며

by 손서영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어쩌다보니 세월이 삽시간에 흘러가버렸고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마흔을 바라보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못하게 된데에는 어쩌면 나의 잘못된 사랑 기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아이들을 너무 사랑한다. 나의 아이들이 방귀를 뀌는 것도 좋고, 내 얼굴에 재채기를 하는 것도 좋고, 심지어 응아를 보기 위해 진지하게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할 때도 사랑스럽다. 밤에 자다가 애들이 짖어서 깨면 짜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인지 덜컥 겁부터 나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으면 혹시 잘못된 걸 먹지는 않았는지 걱정부터 된다. 나는 이렇게 모든 모습이 사랑스럽고, 모든 모습이 화가날 일이 없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결혼을 하려면 이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매사가 거슬리고 잔소리할 일투성이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일은 수도 없이 많은 연애의 연속이었을 뿐이었다.


KakaoTalk_20200112_110735043.jpg 위엄있는 편백이는 아이들의 사랑 공세에 의연한 표정으로 대처하고 있다. 웃음이 난다.


신종플루가 한창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그 당시 만나고 있던 사람도 신종플루에 걸리게 되었고 같은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하루 종일 아프다며 징징거리는 꼴을 봐야만 했다. 나는 아프면 혼자 좀 쉬지 왜 이렇게 쫓아다니면서 아프다고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진종일 투정을 부리는 남자친구에게 걱정은커녕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내가 키우고 있던 ‘숑이’가 감기에 걸렸다. 나는 숑이를 하루종일 안고 다니며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고기 국물을 사료에 섞여서 먹이고 어디 가지도 않고 숑이 곁을 지키는 나를 보면서 나는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하고 반문하게 되었다.


KakaoTalk_20200112_111932679.jpg 내가 너무도 사랑했던 '숑이'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번번히 나의 아이들보다 순위가 밀리니 나는 결혼까지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남자친구와 강아지를 헷갈려 하는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을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내가 남자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시작부터 다르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 바라는 건 그저 건강하기만 해라라는 것이다. 반면 남자친구에게는 열두가지도 넘게 바라고 내가 더 사랑받는 쪽이려고 하니 아이들을 대하듯이 그렇게 되지가 않는 것이었다. 단순히 사랑의 깊이의 문제가 아닌 사랑의 시작부터 달랐던 것이다.


KakaoTalk_20200112_110734385.jpg 해복이 일가는 항상 함께한다. 때로는 가족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그렇게 잘 지낸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에 의아해하고 그 뒤에는 어김없이 “좋은 사람 곧 만날 거야.”라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넨다. 나는 그저 웃으며 “그럼요, 만나겠죠.”라고 답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보다 (물론 나의 시골생활을 이해해주고 무엇보다 내 아이들을 사랑해줄 사람이어야겠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유기견인 나의 아이들을 데려와 지금까지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 결혼해서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 남자의 사랑을 갈구해야만 내 생활이 행복해지는 시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KakaoTalk_20200112_110734810.jpg 요즘 애들이 식탁밑에서 자는 걸 좋아해서 우리 가족은 밥을 먹을때 식탁 밑에 다리를 둘 곳이 없다. 그래도 사랑스럽다.


예전에 내가 정말 재밌게 봤던 드라마 중에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남자주인공과 함께 결혼생활을 하며 이런 말을 한다. “완벽하게 행복해.” 나는 그 드라마를 볼 당시만 해도 그런 순간이라는게 과연 존재할까 싶었다. 짧은 찰나의 순간의 행복도 나에게는 사치일 만큼 쉽게 주어지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 나에게 그냥 행복도 아닌 완벽하게 행복한 때는 상상도 가지 않는 판타지였다. 별에서 온 남자라는 설정보다 ‘완벽한 행복’이 더 판타지 같았다.

KakaoTalk_20200112_110735420.jpg 밤에 잠에서 깨서 애들 잠 안깨게 조심 조심하는데 딱 걸렸다. 결국 애들 다 일어났다. 이런...


그런 내가 요즘에는 완벽하게 행복한 시절을 즐기고 있다. 매순간이 행복하고 하루 종일 행복하고 1년 12달 행복한 시간들을 말이다. 그러니 내가 결혼이 하고 싶어서, 불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생겨서 결혼을 한다기 보다는 이제는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함께하고 싶다. ‘혼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둘이 되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이 말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행복하려고 누군가를 만나왔던 나에게는 그 말이 사형선고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갈 것도 같다. 이제는 완전히 하나가 된다기 보다는 ‘따로 또 같이’처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또 보듬어주면서 함께하고 싶다.


KakaoTalk_20200112_110734610.jpg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나의 아이들처럼 말이다.

가끔 이렇게 소소하게 누군가와 이 행복한 생활을 공유하는 순간들을 꿈꿔보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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