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둥이 눈복이

제 발로 걸어들어온 하얀 털복숭이

by 손서영

어느 4월의 밤, 아이들이 짖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야생동물이 지나가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강도가 점점 심해져 부리나케 뛰어나가 보았다. 그리고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동물을 보고 나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이들이 짖으며 둘러싸고 있는 아이는 다름아닌 집채만한 사모예드였다. ‘이 아이가 여기 왜 있지?’ 나는 일단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모예드를 창고에 넣어두고 하룻밤을 보냈다.


KakaoTalk_Photo_20200523_0253_26129.jpg 북극곰을 닮은 눈복이가 어느 밤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정말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목줄을 질질 끌고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사모예드는 처음 보는 녀석이 아니었다. 이 아이는 내가 봉사를 다니는 보호소에 두 달 전쯤에 새로 들어온 아이였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발견되었다는 이 아이는 눈에 띄게 큰 덩치덕분에 오래 헤매지 않고 보호소에 들어온 듯 털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분명 새끼때 귀여워서 또는 대형견을 키우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분양받아 키우다가 덩치가 커지자 더 이상 키우기 힘들어졌을 것이다. 나도 대형견을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대형견은 보통 가정에서 키우기가 매우 벅찬 경우가 많다. 대형견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먹는 것도, 싸는 것도, 운동량도, 그리고 말썽부리는 스케일도 남다르게 크다. 몇 년전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상근이’라는 그레이트 피레니즈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한때 보호소에 그래이트 피레니즈와 그와 비슷한 견종인 사모예드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었다. 대형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턱대고 들여왔다가 유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KakaoTalk_Photo_20200523_0253_18614.jpg 산책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눈복이는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신나게 산책을 즐긴다.

보호소에 있던 눈복이는 항상 너무 배가고프고 너무 목이 마른채로 지냈다. 눈복이에게는 턱없이 작은 사료와 물이 제공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봉사를 가서 물을 채워주고 돌아서면 물그릇이 비어있었고 사료를 주면 사료를 미쳐 다 주기도 전에 머리를 박고 와구와구 먹어댔다. 항상 사람을 그리워하고 내가 오면 그 덩치로 나를 끌어안으려고 발버둥쳤다. 나는 그런 눈복이가 사실 부담스러웠다. 짖는 소리도 너무 크고 너무 발버둥을 쳐서 오물을 치워주기도, 물과 밥, 간식을 챙겨주는 것도 두 배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사람을 그리워하는 아이는 보기가 너무 안쓰러워 항상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KakaoTalk_Photo_20200523_0252_37018.jpg 눈같이 새하얀 털을 갖아서 눈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근데 너무 천방지축 아무데나 누워있어서 털이 항상 더러워져 있다. 털 관리가 보통 힘든게 아니다.


그런 눈복이가 쇠사슬을 끊고 차로 2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달려와 바로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얼마나 보호소가 싫었으면, 얼마나 나에게 오고 싶었으면 이 밤에 달려와서 이렇게 개가 많은데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왔을까 싶어 되돌려 보내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고로 내 집에 들어와 도움을 청하는 생명은 내치는게 아니다. 다음날 보니 눈복이는 쇠사슬을 끊기위해 안간힘을 쓸 때 왼쪽 송곳니가 빠진 것 같았다. 송곳니는 개의 이빨 중에 가장 단단한 이빨인데 그 이빨이 빠지도록 줄을 잡아당긴걸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피가 나는 잇몸을 소독해주고 눈복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KakaoTalk_Photo_20200523_0252_56784.jpg 눈복이는 덩치가 커서 다른 아이들이 감히 건드리지를 못한다. 적수가 있다면 편백이 정도? 근데 서로 친하지도 않지만 싸우지도 않는다. 서로의 선을 잘 지키며 평화를 유지한다.

처음 보름간은 물과 밥을 엄청나게 먹어댔다. 그간 배고프고 목말랐을 것을 생각하여 무조건 충분히 주었다. 대부분의 유기견들은 처음에는 물과 밥을 엄청나게 먹지만 물과 밥이 항상 충분히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금방 자신의 본래 양으로 돌아오고는 한다. 눈복이는 그 기간이 보름쯤 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먹기는 하지만 사모예드의 본래 양만큼만 먹고 있다. 그리고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눈복이는 우리 가족 중에 아빠를 선택하였다. 아빠만 졸졸 쫒아다니면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지내고 있다. 다른 많은 아이들을 나를 쫒아다니는데 유독 아빠만 따르는 눈복이를 아빠는 매우 귀여워하셨다. 나에게 가끔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시는데 눈복이가 온 후부터는 온통 눈복이 사진뿐이다. 이렇게 아빠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서 더 이상 눈복이는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버릇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 복덩이 눈복이는 정신없이 나부대는 개에서 아빠의 호의무사로 당당히 자리매김을 하였다. 이렇게 보호소에서 문제견으로 보이는 개들도 충분한 사랑과, 풍족한 먹이, 그리고 안락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랑스러운 개로 변신한다.


KakaoTalk_Photo_20200523_0253_11876.jpg 아빠만 졸졸 따라다니는 눈복이는 아빠가 죽순을 캐실때 그 옆에서 죽순을 얻어먹고는 한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아빠가 자꾸 그 귀한 죽순을 주신다. 죽순이 아린지 몇 입먹다 버린다.


모든 동물을 분양받거나 입양할 때 좋은 점만 보지 말고 힘든 점도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이들이 버려질 때는 그 힘든 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유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대형견의 경우, 한국의 주거환경에서 소형견에 비해 힘든 점이 더 많다. 그래서 유기된 대형견은 국내에서 입양률이 매우 저조해 해외로 입양을 많이 추진한다. 이렇게 입양이 되기 힘든 대형견은 유기되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는 것이 최선의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형견을 식구로 맞이할 때 반드시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KakaoTalk_Photo_20200523_0253_04963.jpg 오늘도 눈복이는 아빠 곁을 지킨다. 눈복이의 지정석은 연못가 아빠 의자 옆이다. 눈복이가 안보이면 그 자리를 보면 항상 드러누워 자고 있다.

눈복이는 이제 눈복이를 옭아매던 쇠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개치고 다닌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달려오는 눈복이를 우리 가족은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한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눈복이는 산책도 잘하고 간식도 제일 많이 먹고 시원한 그늘에서 늘어지게 잠도 자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 아직도 우리 집에 어떻게 찾아왔는지 신기하고 대견한 우리 눈복이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영리한 아이로 죽을 때까지 사랑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북극곰’ '먹보' '먹깨비' 라는 별명을 가진 눈복이는 연못가 아빠가 앉아계시는 의자 옆에서 오늘도 사랑받으며 코코 자고 있다. 이런 눈복이의 행복한 일상이 영원히 계속되도록 나와 우리 가족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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