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사랑해주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by 손서영

나는 지금 유기견 25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이렇게 많아지기 전에 나도 1마리만 키우던 시절도 있었고, 3마리만 정성 들여 키우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사료도 최고급 사료에서 시골에서 파는 저가 사료로 바뀌고, 미용도 한 달에 한번 꼭 대치동 미용실에서 하다가 지금은 그냥 내가 클리퍼로 밀어주고 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점도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누구 하나 편애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하며 키우겠다는 마음가짐만큼은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복오가 침대 위에서 자고 싶은데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듯 몸만 걸치고 자고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참 쉬운 일이 아니라고 요즘 들어 많이 느끼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누군가는 조금 힘이 약하기도 하고 쳐지기도 하고 소심하기도 한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감이 있고, 독립적이고, 다소 거칠기도 한 아이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손이 많이 가고, 모든 조심해서 아이를 다루어야 하며, 항상 챙겨줘야 한다. 후자의 경우 좀 신경을 덜 써도 잘 자라주지만, 단점으로는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먹을 것을 뺏어먹는 다거나 하는 점이 있다. 이 둘이 서로 단점과 장점이 있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약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분명 둘을 동등하게 대해야 하는데 나는 괴롭히는 아이들을 혼을 내고 좀 냉정하게 대해서 기를 죽이고, 약자인 애들은 모든 잘 했다고 하며 기를 살리게 된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큰 아이들은 힘이 세고 작은 아이들은 큰 아이들에게 조금 치이게 된다. 울 집 왕초들이 한데 모여 있다.


이렇게 한다고 기 센 아이들이 기가 죽지도, 약한 아이들이 기가 살지도 않지만, 나는 중간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잡기 위해서 항상 고군분투를 한다. 그러다 지치면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붙잡고 애걸하기도 한다. 공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먹이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사랑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싸움을 걸고, 뺏고, 때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소복이는 작은 개에 해당하기 때문에 애들을 괴롭히는 일은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큰 개들인 사총사(복일, 복이, 복삼, 복오)다. 이들은 한 배 새끼들로 아주 어릴 때 우리 집앞에 버려져 있던 아이들이었다(내가 주소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이다). 내가 지극정성으로 분유를 먹여 키워낸 아이들이다. 이제 1살이 된 이 녀석들이 온갖 말썽을 부리고 다니는 통에 요즘 좀 애를 먹고 있다.


우리 집 앞 상자에 넣어져 버려진 사총사. 한마리는 어릴때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사이좋게 밥 먹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다른 말썽은 정말 다 괜찮다. 집을 어지럽혀도 괜찮고, 내 신발을 요절을 내놔도 괜찮다. 심지어 내 방 문짝을 다 뜯어나도 괜찮다. “누가 이랬어? 정말 너네 이럴 거야?” 이 한마디가 전부다. 그냥 묵묵히 치우거나 고치거나 하면 된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우리 집에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마음에 상처투성이인 아이들로 내가 남은 인생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집에 데려온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 약속과 다르게 기 한번 못펴고, 두려운 마음을 여기에서 까지 안고 살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 온 뒤 살이 포동포동 쪄서 뒷태가 너무 귀여워졌다. 토실토실 엉덩이가 귀엽기도 하다.


그래서 사총사를 당분간은 묶어서 길러야 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총사를 혼낸 날은 내 방 거실에서 자고 있는 사총사 하나하나를 쓰다듬어 주며 미안하다고 나지막히 속삭이며 속상한 마음을 달래던 나였다. 그런 내가 애들에게 자유를 앗아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속에서 불이나게 속상했다. 그래도 더 이상 다른 아이들이 다치는 것을 묵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의 역할에는 좋은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때론은 악역도 필요하다. 그렇게 결정하고도 차마 아이들에게서 자유를 앗아가지 못해 망설이다 최근 들어 사총사 중 가장 말썽쟁이인 복삼이 그리고 작은 애들을 유독 못살게 구는 복이를 묶어놓았다. 아이들을 사랑해주는 일만큼은 자신있었는데, 사랑만 가지고는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 때의 복삼이. 이때부터 말썽을 엄청 부렸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사이좋게 지냈었다. 이런 녀석을 묶어 키우려니 내 마음이 찢어지는게 당연하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품은 아이들에게 만큼은 파라다이스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맘을 너무 몰라주는 사총사는 끊임없이 나의 이런 꿈을 산산조각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슬펐고 종단에는 이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그 결론이 너무 싫고 무서워서 정말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지금은 사총사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말썽도 덜해진다는 것을 많은 문제견을 키우면서 채득하게 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간을 이런 방식으로 지나가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써는 다른 방도가 없다.


셀카 각도로 찍은 사진. 복오는 이 셀카가 맘에 들지 모르겠다. 얼짱 각도는 아닌 것에 틀림이 없다.

이 녀석들이 산책을 갈 때 풀어주면 다시 묶어놓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오전에 복삼이를 목줄을 해서 산책시키고 오후에는 복이를 목줄을 해서 산책시키고 있다. 또 시간 날때마다 아이들이 묶여 있는 곳(외로울까봐 바로 내 방 앞에다 묶어놓았다)에 가서 놀아주고는 한다. 그리고 다른 사총사들(복일이와 복오)는 무리가 해체되자 힘을 잃고 다른 아이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나의 아이들은 이제 다시 찾은 평화에 마음 편히 외출도 하고 집안에서 다리 쭉 피고 잠도 자면서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내가 한 선택이 어쩔수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내고는 한다.


목줄 산책도 즐겁게 하고 있는 복삼이다. 복삼이의 웃는 얼굴을 보아도 내 마음은 여전히 아프다. 빨리 자유를 되찾게 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사랑만 가지고는 안되는 일이 있다.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사랑으로, 아이들의 문제행동도 사랑으로 극복해왔는데... 이번에는 사랑이 통하질 않는다. 그럴때는 어쩔 수 없이 무력으로 자제를 시켜야 한다. 엄마라는 위치는 사랑만 해주는 것이 아닌 때론 매를 들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은유적 표현이다 나는 단 한번도 매를 든 적이 없다). 남들은 내가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이 많아 힘들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일이 많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양손에 주부습진으로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보다는 이런 순간에 더 힘들다고 느낀다. 누구의 편에 서서 누군가를 혼내야 할 때 나는 그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 부디 나의 사총사가 철이 들어서 더 이상 다른 아이들을 공격하지 않는 시절이 오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나의 사랑스런 사총사야, 제발 우리 평화롭고 행복하게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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