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유학을 마치고 시골에 와서 산다고 했을 때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어렵게 공부해서 빨리 써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시골에서 이제까지 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이해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사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빨리 자리잡기 위한 치열한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있는 이곳에 정착하였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무엇이 더 소중한가를 끝없이 고민하였고 그것은 나의 성공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나의 아이들과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선택은 옳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런 나도 처음부터 시골에서의 삶에 잘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처럼 일자리를 찾기도 힘들었으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곳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했다. 일거리가 없었던 시절에는 부모님에게 죄송한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서울처럼 술 한잔 기울일 친구가 없다는 것에 답답한 적도 많았다. 다행히 지금은 동물병원에도 나가고, 이런 저런 글 요청에 글도 쓰고 강의도 하면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일자리도 친구도 없던 시절, 쓸쓸한 마음이 내 마음 속에 파고들 때면 나는 자연 속으로 그 풍경 속으로 그저 아이들과 느릿느릿 걸었다. 어느 겨를에 나의 얼굴에,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의 손길이 느껴지고 묵고 탁한 기운 대신 맑은 기운이 몸에 차오를 때, 나를 짓누르던 머리 속이 가뿐해진다. 그리고 찬란한 햇빛 속에서 무엇이 그리 신이 났는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의 모습도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데 힘을 보탠다. 그렇게 나는 나의 삶이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의 잔잔한 즐거움이 없으면 일도 공부도 수행도 진보가 한참 늦는다는 혜민 스님의 말씀처럼 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이, 그리고 그 아이들이 나에게 해맑게 달려오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었고 그 즐거움을 발판 삼아 하루하루를 걸어나갔다.
그 사이 나의 순이는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되었다. 항상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사총사가 괴롭혀서 항상 겁에 질려 있었는데, 복삼이와 복이를 묶어두고 부터는 자신감도 생기고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심지어 잠은 내방에서 꼭 자더니 요즘에는 외박이 부쩍 늘었다. 나가서 찾아보면 친구랑 같이 마당에서 자고 있곤 한다. 나한테서 조금씩 독립하는 순이가 나는 그저 대견하기만 하다.
러시아 태생의 사모예드, 눈복이는 더위에 매우 취약했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를 힘겨워해서 미용을 해야만 했다. 대형견 미용비가 너무 비싸서 내가 돈 좀 아껴보겠다고 했다가 아주 인물을 망쳐놓았다. 눈복이를 가장 사랑하는 아빠는 나를 고소하겠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도 눈복이가 조금은 시원해하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다.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만 있다면 인물 정도는 조금 포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눈복이의 심중을 알 수 없으니 잘한 일이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지난 밤 비가 무척 많이 왔다. 천둥 번개도 칠 것 같은 날씨였다. 나의 아이들은 비오는 날이면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와 한자리씩 차지하고 잠을 잔다. 그런데 그 날따라 편백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홀(강아지들이 머무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 듯 했다. 편백이는 덩치는 산만해도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다. 나의 우려와 같이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편백이가 쏜살같이 내 방으로 들어와 내 방 책상 밑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책상 밑에 들어가서 편백이를 안고 계속 달래주었다. 천둥 번개가 잦아들고 편백이도 편하게 잠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나의 삶이 좋다. 이렇게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는 나의 아이들을 지켜보는 일도 그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갖은 집안 일도 좋다. 나는 일하고 아이들은 놀다 놀다 지쳐서 잠든 이 시간도 좋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돌아보면 삶의 행복한 광경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도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여유가 한 발짝 더 나아가 동물들에게도 좀 더 따스한 시선으로 와 닿길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