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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7. 2023

최은영이라는 멋진 장편소설가를 소개합니다

최은영의 『밝은 밤』 리뷰

최은영을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였다. 제목은 쇼코의 미소였지만 결국은 소유와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마지막 장면에 서울에 온 쇼코는 소유와 어렵게 화해를 한 뒤 이틀 동안 소유의 자취방에서 소유가 만든 어설픈 단편영화 두 편을 보고 그동안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일본어로 보냈던 이백여 통의 편지들을 전부 통역해 들려준다. 요리할 시간도 아끼느라 중국 음식을 시켜 먹으며 해 준 번역을 통해 소유는 할아버지의 쓸쓸한 마음과 고달픈 인생을 알게 된다.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지는 소설이다.


그렇게 최은영에 입문해 단편들을 읽던 나는 그의 첫 장편 『밝은 밤』을 읽고는 무릎을 쳤다. 엄청난 소설가가 등장한 것이다.  '밝은 밤'은 서른두 살에 이혼을 하고 희령이라는 동쪽 도시로 내려간 지연이라는 여자가 그곳에서 친할머니 영옥을 우연히 만나 가까워지면서 할머니의 엄마인 백정의 딸 삼천이와 아버지 박희수, 그리고 이웃집에 살았던 '새비' 아주머니 아저씨 얘기까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에 대해 듣게 되는 장편소설이다. 개성에서 지내던 삼천이(증조할머니) 내외, 새비 내외 얘기는 박경리의 『토지』나 「김약국의 딸들」을 읽는 것처럼 그윽하고 유장했다면 지연과 지우가 바람피운 전 남편을 욕하는 장면은 김애란이나 정세랑이 쓴 글처럼 젊고 경쾌한 느낌이 났다. 새비네와 증조할머니가 울면서 헤어지는 장면, 명숙 할머니가 보내온 편지의 사연 등은 너무나 슬프다. 피란길에 자꾸 쫓아오는 꼬마를 떨쳐내거나 개성에서 키우던 개 봄이를 돌려보내는 등 이 소설엔 헤어지는 장면이 유난히 많은데 그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3대, 4대까지 내려가 평안도 사투리로 그들의 목소리를 불러오는 최은영의 능력에 놀랐다. 그의 소설 전반엔 가부장제의 억압과 스스로의 기만으로 인한 다양한 인간 비극이 깔려 있다. 작가는 3부를 쓸 때 다 버리고 새로 썼다고 한다. 자신이 쓴 것을 버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도 조금은 안다. 다행히 레지던스에 들어갔을 때 아침에 식탁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앉아 이 소설을 쓸 때의 행복한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카피라이팅 강의를 할 때 잠깐 시간이 남아 도서관에서 우연히 《한국문학》이라는 문예지를 읽게 되었는데 '이십삼 년 상반기 한국문학' 특집 베스트셀러 소설 총평에서 편집위원 하응백 작가가 최은영의 『밝은 밤』을 최근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성과라고 단언하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 남성은 조연일 뿐 이 소설의 붉은 속살은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이야기라는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평론가를 만나니 나만 그렇게 여기고 있었던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기뻤다. 나나 하응백 작가가 아니라도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손가락을 세워 감탄할 것이라 자신한다. 아직 안 읽으셨다면 어서 서점으로 달려가 이 책을 구입하시라. 작가가 제목을 밝은 밤이라고 지은 것은 할머니들이 지나온 세월이 밤처럼 깜깜했지만 아주 어둡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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