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대학로 갔던 짧은 이야기
오전에 봉사활동을 갔다 오느라 녹초가 되었던 아내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 있던 그녀가 갑자기 밖에 나가 놀자고 해서 무작정 나갔다가 다이소에 가서 하수구 마개로 쓸 실리콘 냄비받침을 하나 사고 “어디로 갈까?” 하다가 대학로로 갔다. 우리 집에서 대학로까지 13분 정도 걸린다.
아르코예술극장 앞 광장에선 ‘문학주간2023’행사를 하고 있었다. 최윤 작가와 현기영 작가의 강연과 북토크가 있는 날이었는데 전혀 몰랐다. 알았으면 예약을 하고 갔을 것이다. 이래서 늘 세상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입구 쪽에 있는 부스에 가보니 ‘필사의 시간‘이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타자기로 쳐보거나 만년필로 써서 간이 전시를 하는 행사였다. 아내와 나는 신이 나서 종이와 연필을 얻어와 테이블에 앉아 글씨를 썼다. 아내는 어제 산 유진목 시인의 시를 필사했고 나는 중학교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었던 한국인 독자 투고 글을 외워서 썼다.
우리가 쓴 글을 나무집게에 찝어 전시하고 다른 부스에 갔더니 퀴즈를 풀라고 해서 또 신나게 퀴즈에 임했다. 상품으로 메모지를 얻었고 나는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하나 받았다. 아내도 1970년생 시인의 시집을 하나 받았는데 시가 형편없다고 화를 냈다. 나도 읽어 봤는데 그저 그랬다. 그 시인은 평소에도 말만 많고 시는 별로야, 라고 내가 말했다. 무슨 시집인지는 안 가르쳐 주겠다. 내가 받은 김용택 시인의 시집은 물론 좋았다. 벌써 두 편이나 귀퉁이를 접었다. 그중 ‘눈이 쌓인다 다음 문장으로 가자’라는 시에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역시 뭘 좀 아는 분이시다.
대학로 근처 산다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했다. 창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