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권총이 나오는 초단편 소설
아버지가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백 일간 신에게 열심히 기도를 했더니 이에 감복한 신이 드디어 어젯밤 꿈에 나타나 뭐든 좋으니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냥 개꿈 아니겠느냐는 딸의 비아냥은 엄마의 따귀 한 대로 멈췄다. 딱 한 번밖에 기회가 없으니 소원을 신중하게 빌어야 한다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다. 세계 평화나 민주화, 핵무기 감축 등 허황된 걸 생각하는 건 허락되지 않았고 실질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돈이었다. 액수를 얼마로 정하느냐가 문제였다. 백지 수표를 눈앞에 두고 고민하던 여배우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니지. 꼭 이런 데다 여배우 같은 성 차별적 단어를 갖다 붙여야겠니. 엄마가 점잖게 큰아들을 훈계했고 아버지는 농담을 삼가라고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아,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게 됐네. 김 부장 이 새끼 억울해서 어쩌냐." 큰아들이 자신을 괴롭히던 직장 상사를 거론하며 웃었다.
"야, 걔한테 사표 집어던지면서 일 년짜리 해외여행 간다고 해. 괜찮아." 아버지도 신이 나서 말했다.
"그동안 너 고생했지 뭐. 적성에 안 맞는 일 하느라고. 휴일에도 계속 출근하고..." 엄마도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모처럼 가족 분위기가 화목해졌다.
"그러게요. 오죽하면 제가 일요일에 한 번만 푹 쉬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겠어요." 아들이 껄껄껄 웃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스피커폰으로 음성이 들려왔다. "소원이 접수되었습니다."
아. 천장이 하얘졌다. 피가 거꾸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외쳤다. 안 돼. 안 돼. 이럴 순 없어!
"아주 잘했어, 오빠. 이번 주 일요일에 출근 안 해도 되겠네." 딸의 시니컬한 반응에 아버지는 격분했다. 안방 침대 서랍 속에 있던 권총을 꺼내와 딸을 쏘려다 큰아들을 먼저 쐈다(도대체 이 집에 권총은 왜 있는 거야?). 큰 아들은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뜬 채 절명했다. 야간대학원 동기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서른세 살 화창한 가을 날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비로소 생각난 듯 딸도 쏘았다. 공부를 싫어해 열아홉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경력 팔 년차 프리터족 여성이었다. 막내아들은 군에 가 있어서 쏠 수가 없었다. 아내를 찾았으나 안 보였다. "여보, 어디 갔어?" 아버지가 소리치자 엄마가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와 손에 들고 있던 나무 도마로 아버지의 목을 가격했다. 남편의 목이 꺾인 틈을 타 총을 빼앗은 아내가 남편을 쏘자 그도 절명했다. 근거리 명사수 부부였다.
"보통 이럴 땐 세 가지 소원을 빌던데. 아유, 신이 쪼잔해서."
모든 일은 신의 마음 씀씀이가 좁아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엄마는 물을 한 잔 마시고 권총에 남은 탄환을 확인하고는 러시안 룰렛 하듯 총구를 관자놀이에 대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