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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13. 2023

위기를 실감 나게 보여준 연극

국립극단의 《당신에게 닿는 길》

작가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작품을 쓰면서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고, 운이 좋으면 사태의 본질까지 깨닫게 되는 행운을 누린다. 한민규 작가 겸 연출도 그런 케이스로 보인다. ‘기후위기’를 다룬 연극을 만들기로 하면서 그는 그동안 연극의 소재로만 여겼던 이 주제가 사실은 모두의 코앞에 닥친 위기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기후위기 - 공생 - 연결’이라는 작품의 키워드는 ‘분노하지 않는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통찰을 거쳐 2023년 연극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2043년에 연극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보여주며 이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음을 객석에 고한다. 그 가운데는 극을 이끌어가는 작가와 이안이라는 소녀가 있다.  

    

《벚꽃동산》 《한남의 광시곡》으로 낯익은 이다혜 배우와 《보존과학자》 《앨리스 인 베드》의 김시연 배우, 그리고 《보존과학자》 《빵야》의 이상은 배우 등이 펼치는 진지하고 진심 어린 연기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감독의 나레이션과 배우들의 독백으로 대부분의 메시지를 전하는 연출방식은 자칫 대학연극처럼 유치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행히 배우들이 흔들리지 않는 연기 덕분에 긴장감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극중극 형식의 연극에서 미래의 존재들이 지구의 화석을 조사하며 ‘닭, 돼지, 소의 뼈가 제일 많은 것으로 보아 이 별은 닭이 우세종이었던 것 같다’라고 추측하는 장면은 기지가 넘쳤다. 우리가 치킨을 비롯한 동물 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는지 우회적으로 고발하는 아이디어였으니까.  아내는 ‘최근에 본 연극 중에 가장 공포스러웠다’는 소감을 밝혔다.


국립극단의 [창작공감: 연출]을 통해 개발된 작품이다. 변죽만 올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 공감하게 만드는 연극을 원한다면 약간의 용기를 내서 보시기 바란다. 10월 29일까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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