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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08. 2023

화장실엔 시집을 몇 권 가져다 놓자

월간 공군칼럼

두 달에 한 번씩 공군들이 보는 잡지 '월간 공군'에 책 소개하는 칼럼을 쓰고 있는데요, 이번엔 박연준 시인과 박준 시인의 시집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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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엔 시집을 몇 권 가져다 놓자

     

그동안 소설이나 인문학책을 주로 소개해 드렸죠. 오늘은 시집을 두 권 소개해 볼까 합니다. 사실 저에게도 시는 참 어려운 분야라 혹시라도 누가 시가 뭐냐고 묻는다면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시인은 몇 명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박연준 시인과 박준 시인의 시집을 다시 들춰보고 싶어졌습니다.

     

박연준 시인의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라는 시집은 내용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제목만 읽었는데도 아, 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도대체 아버지는 왜 딸인 시인을 처제라고 불렀을까요? 그 비밀은 시집의 제목이 탄생하게 한 시 <뱀이 된 아버지>를 읽으면 쉽게 풀립니다. 아버지를 병원에 걸어두고 나왔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아버지에 대한 시인의 개인적인 사랑과 연민, 애증 등이 뱀이라는 징그러운 동물을 통해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아마도 시인의 아버지가 입원했을 때는 이미 치매나 섬망 증세가 있었을 겁니다. 본인은 몰랐더라도 말이죠. 아버지가 자기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처제라고 부르는 장면을 보고 가족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본인은 모르고 타인은 아는 그 아이러니한 슬픔과 존재의 고독은 독자인 제게도 까닭 모를 연민과 안타까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다음입니다. 시인이 정했는지 편집부에서 회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을 이렇게 달고 나니까 이 문장은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단박에 인간 실존의 문제로까지 확장되는 기분입니다. 문학의 힘은 이런 게 아닐까요. 인간의 일생을 글 몇 줄에 담아내는가 하면 반대로 아주 작은 소재로도 세상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설명하기도 하는 능력 말입니다. 이 시집에 있는 다른 시 <서른>의 앞부분엔 ‘간장을 종지에 따르다가 한 방울이 튀었는데 그 까만 점 속에서 자신의 서른이 피어나는 것을 보는’ 시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들에게는 까만 점이나 얼룩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간장 한 방울이 시인의 눈엔 이십 대를 끝내고 새로운 십 년으로 들어서는 거대한 마침표로 보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고 나니 시인이 어떤 일에 종사하는 직업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걸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치 천국에서 그런 임무를 받고 파견된 천사들처럼.

     

혹시 그리스 시대에 플라톤이 ‘시인 추방론’을 펼쳤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플라톤의 저서 『국가』엔 시인들은 열등하면서도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는 자들이므로 추방해야 한다는 말이 적혀 있답니다. 이성을 지상 최고의 선, 이데아로 여기던 프라톤에겐 매사를 의심하고 뭐든 삐딱하게 보는 시인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겠죠. 하지만 어느 시대에도 시인은 존재했고 그들은 가난한 옷과 깡마른 몸매에도 불구하고 형형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셰리는 시인들을 ‘인정받지 못한 입법자’라고 불렀고 T.S 엘리엇은 ‘시인이 없으면 인류가 인류이기를 포기하게 된다. 시인이 죽으면 신을 향했던 열망과 감정이 죽는다’라고 한 거겠죠. 심지어 보르헤스는 시인을 일컬어 ‘신이면서 동시에 비천한 자’라고 했답니다.

     

그런 면에서 박준 시인의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시집은 충격이었습니다. 이 시집엔 어쩐 일인지 자살을 하려고 손목을 깊게 그었던 남자와 시인이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딱히 할 말이 없어 조용히 먹고 마시기만 하던 시인이 처음 던진 질문은 왜 하필 봄에 죽으려고 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참 사교성 없고 황당한 질문이죠. 그런데 남자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라며 웃거든요. 그리고 시인은 ‘마음만으로 되지도 않고 내마음 같지도 않은 일이 봄에는 널려 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저는 황당했습니다. 아니,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단박에 이렇게 처연한 계절로 만들어버려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하지만 박준 시인은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입니다. 과묵한 아버지와의 대화를 다룬 시 <생활과 예보>는 하루 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일기예보를 듣고는 “야, 비가 온다니 꽃 다 지겠다”라고 처음으로 한마디 하는 게 전부입니다. 비가 오니까 꽃잎 떨어지겠다고 하는 말이 뭐 대단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말을 곱게 간직하고 있다가 시로 다시 써서 의미를 만들어낸 시인의 감성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박준 시인은 데뷔작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베스트셀러가 됨으로써 화제를 불러 모았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감기약처럼 여기고 며칠을 먹었다는 고백에 감복한 어느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이 시집을 극찬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감성은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를 쓰기 위해 기자나 소설가처럼 취재를 많이 다닌다는군요. 낯선 동네에 가서 사람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기도 하고 심지어 광부에 대해서 써보고 싶어서 폐광이 있는 고장에 가서 병원 대기실 벤치에 앉아 있다 오기도 했답니다.

     

예전엔 종이신문이라도 읽었는데 이젠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봅니다. 저는 그게 싫어서 저희 집 화장실에 시집을 몇 권 가져다 놓았습니다. 화장실에서는 긴 소설보다 짧은 시가 어울리니까요. 칸칸이 시집이 한 권씩 놓여 있는 공군화장실을 상상해 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시인들이 인세를 더 많이 받게 되겠죠. 그럼 더 기운을 내서 시를 쓰게 되고요. 어쩌면 고마운 마음에 공군을 찬양하는 시를 한 편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시인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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