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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09. 2023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 연극

극단 고래의 <우리>

50대 아재가 페미니즘을 다룬 연극을 한다고 하면 일단 걱정부터 앞선다. 가부장제의 시각과 감성으로 평생 살아온 사람이 과연 페미니즘 정서를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물론 <한남의 광시곡> 같은 훌륭한 성공의 예가 있지만).  홍예성 연출가도 이런 염려에 작품을 준비하기에 앞서 연극계의 페미니스로 소문난 이해원을 부른다. 같이 충분히 스터디하고 공동 연출로 페미니즘 연극을 올려보자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동종업계 동료인데도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은 지난하기만 하다. 극단 고래의 <우리>는 하나의 연극이 만들어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다룬 작품이다.

스터디와 워크숍 과정에서 두 선후배 연출가는 사사건건 대립한다. 일단 사용하는 용어부터 조심해야 하는데 홍예성에게 그런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사사건건 주의를 받으며 신경을 쓰다 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건 이해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여성들은 이런 상태로 살아왔고 이제야 그걸 깨닫고 좀 바꿔 보자는 건데 나는 왜 아직도 늘 화를 내며 질문을 하는 역을 맡아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양자역학'을 다룬 연극을 준비하는 극단 상어의 후배들 이야기까지 더해진다. 양자역학은 기존의 물리학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이론이라 그냥 설명하기도 힘든데 이걸 연극으로 만들려고 하니 서로를 납득시키는 일 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지경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일이 가장 힘든 법인데(컨설팅 분야의 일이 대부분 그래서 힘들다) 이 연극은 아직 대본도 배역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니 배우들은 서로 싸우고 미치는 과정을 향해 달린다.

극단 고래는 이렇게 논쟁적인 작품을 내놓는 기백이 있다. 두 시간 내내 반복되는 회의와 질문과 의심은 관객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과 함께 어떤 일이 뭔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든 지를 피부로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메타적 다큐멘터리'라고 규정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세밀해서 나중엔 관객도 등장인물들처럼 지쳐버린다. 물론 중간에 배우들이 환희에 차서 춤을 추는 장면 등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아무리 논쟁적인 작품이라도 조금 풀어주는 게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 낮 공연은 프레스콜이라 조금 자유롭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었는데, 아쉬운 건 누구보다도 페미니즘 연극을 봐야 할 젊은 남성 관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프레스콜이라 그렇겠지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지 앞쪽에 앉아 방귀를 길게, 크게 뀐 남성은 정말 비매너였다. 프레스콜에서는 그렇게 뻔뻔하게 방귀를 뀌어도 된단 말인가. 아, 얘기가 또 엉뚱한 데로 흘렀다. 죄송하다. 연극 잘 보고 헛소리 해서. 2023년 11월 9일부터 19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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