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뻐하며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우리의 섭생을 채식으로 바꾸자는 얘기도 아니고 여성을 내세운 페미니즘 소설도 아니다. 페미니즘을 훨씬 넘어서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지,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소년이 온다』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사의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가해자들을 미워하는 쉬운 길보다는 폭력에서 존엄으로 가는 어려운 길을 택한다.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딸이 광주항쟁이나 제주 4.3 항쟁을 고발하는 소설을 쓰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강은 세계인의 시선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높고 고상한 가치를 추구한다. 다만 두 소설에 대해서는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수많은 종류의 폭력이 담겨있다. 역사적 사건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폭력의 반대편에 서겠다는 맹세이자 인간 본성에 궁극적인 질문이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현대사를 소설로 쓰는 이유 역시 인간에 대한 근원적 탐구가 목적임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을 주며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력한 시적 산문"이라고 시상 이유를 밝힌 것도 인간의 존엄에 천착하는 한강의 태도를 높이 샀기 때문이리라.
새벽에 일어나 존 치버의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 중 「아름다운 언어(The Bella Lingua)」라는 단편을 읽었다. 케이트의 아들을 데리러 이탈리아에 온 조지 삼촌이 "로마에 왔더니 길거리에 아무 옷도 입지 않은 남자들의 동상이 있더라"라며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원 한복판에 아무것도 입지 않는 남자의 동상이 있는 건 문제라며 트집을 잡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삼촌에 기가 막힌 케이트가 "그건 단지 사물을 보는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라고 말하지만 조지 삼촌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 부분을 읽으며 '한강이 광주 518과 제주 4.3을 왜곡했다'라는 이유 등으로 이번 노벨상은 차라리 중국의 찬쉐가 받았어야 한다고 썼던, 아주 일베스러운 김 모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어제 새벽에 페이스북을 검색하다가 그 글을 보고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막혔는지 모른다. 어떻게 노벨상까지 진영논리를 끌어들여 비난을 하는지, 그리고 그 글에 댓글로 맞장구를 치고 있는 이들은 인간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한숨만 나온다.
이번 한강의 수상에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공이 컸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역시 한강의 문장과 생각이 먼저다. 한강은 자신이 쓰는 모든 글을 다 소리 내서 읽어 본다고 한다(그래서 그런지 낭독도 정말 잘한다). 칼럼 한 편을 써도 금방 지쳐 낭독을 해볼 생각을 못하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정함이다. 평론가 신형철이 말한 대로 '열심히 쓰는 작가들은 많지만 한강은 언제나 사력을 다해 쓴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수상 후 인터뷰나 축하연을 하자는 제안에 '지금 세계 두 곳에서 전쟁을 하느라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축하잔치를 할 일인가'라고 거부한 것 역시 존경스럽다. 내가 재밌게 읽은 책 51권에 대해 쓴 『읽는 기쁨』에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다룰 때 챕터 제목을 '내 마음속에서 일등을 했던 소설들'이라 했는데 이제 한강은 내 마음속은 물론 세계에서 일등이라 해도 무방한 소설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한강 보유국'이라는 새로운 농담에 마구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진다. 정말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