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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턴바스에서 온수기를 협찬받다

조선일보 칼럼을 읽고 연락해 오신 사장님

by 편성준
정성껏 준비한 웰컴 메시지가 '우연한 방문자'를 즐겁게 했다.


'새턴바스'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욕실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인데 내가 조선일보에 쓴 칼럼(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5/04/05/6VKNFAM3PVCINDM5CLV72IZJWQ/)

을 읽은 대표님이 작가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해서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이다. 칼럼을 쓰고 옛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일면식도 없는 기업체 사장님이 연락을 해온 건 처음이었다. 담당자인 허은 이사와 통화를 하고 서울 가는 날을 골라 미팅 날짜도 정했다. 무슨 얘기를 나누게 될지는 모르지만 호의적인 초대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새턴이 무슨 뜻인가 궁금해 사전을 찾아보았다. Saturn, 토성이라는 뜻이었다.


회사는 논현동에 있었다. 내가 회사 건물 층계를 올라가고 있는데 어떤 젊은 여성이 "어머, 편 실장님 아니세요?"라며 알은체를 했다. 내가 CM프로덕션 다닐 때 카피라이터 면접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반가워서 어느 광고회사에서 근무하냐고 물었더니 지금은 다른 직종의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기한 일이라 생각하며 회사 로비로 올라갔더니 내 책 『읽는 기쁨』표지와 함께 '편성준 작가님 새턴바스 본사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환영 문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회의 테이블 위 펜을 모아두는 그릇도 욕조 모양이라 눈길을 끌었다.

정인환 대표는 표정이 밝고 목소리가 컸다. 회의실엔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회의실 펜꽂이도 욕조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게 귀여웠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소명의식이 느껴졌다. 새턴바스(영문명: Saturn Bath)는 ‘욕실 중심의 주거 문화 창조’를 기업 이념으로 1990년 설립된 대한민국 욕실 전문 기업이다. 주력 제품은 욕조, 세면대, 욕실 가구, 샤워부스, 스팀 사우나 등이며, 경기도 포천에 자체 제조 공장이 따로 있다. 정 대표는 규격화된 '모듈러 욕실'을 제작해 공급하는 게 새턴바스의 주력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특히 노인들의 낙상 방지를 위한 '실버 욕실 개조와 리모델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수명이 길어진 현대 사회에 맞춰 미래의 욕실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고민이 많은 것이다.


내가 '욕조는 인간이 만든 가장 시(詩)적인 공간이다'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소개하자(물론 미리 준비해 간 문장이었다) 장 대표도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공간이 욕실이라고 화답했다. 그는 변소와 욕실은 엄연히 다른 공간인데 자신이 사업을 시작한 지 35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변한 게 없이 욕실이 가장 낙후된 공간으로 남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내게 욕실에 관한 책을 하나 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자신은 욕실 전시장(쇼룸)을 기획하고 있고 옆에 있는 허은 이사는 욕실에 관한 노래를 만들었을 정도이니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해 보면 욕실문화를 바탕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당장 보령 집 공사가 끝나면 집필하기로 한 책에 새턴바스를 소개하는 글부터 쓰겠다고 대답했다.

새턴바스 허은 이사는 욕실에 관한 노래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고 한다.


첫날이니 개괄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고 다음 미팅 땐 기획자인 윤혜자와 같이 오겠다고 했더니 무척 반가워하며 그러자고 했다. 회의실을 나오는데 허은 이사가 주소를 물었다. 지금 공사를 하고 있는 집에 순간온수기를 협찬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새턴바스의 순간온수기는 샤워기를 틀고 2~3초 만에 물온도가 정해진 숫자만큼 올라간다고 했다.


일주일쯤 후 정말 보령 대천동 새 집 공사장으로 순간온수기가 도착했고 결국 우리는 자난 주부터 매일 아침 새턴 순간온수기를 이용해 샤워를 하고 있다. 아내는 38°C로 맞춰진 물 온도 덕분에 샤워가 더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전에는 머리를 감을 때 도중에 샤워기를 끄면 몰 온도가 변해 아예 끄지 않고 가랑이 사이에 샤워기를 꽂고 있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며 웃었다. 나도 근력학교 다닐 때 백 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차가운 샤워기 물줄기 앞에서는 먗 초 간 망설이는 순간이 있다는 엄살이었다. 그런데 순간온수기가 그런 머뭇거림을 날려준 것이다.


순간온수기 설치 사진을 보내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긴 했지만 그동안 집수리와 이사를 연이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좀 정리가 되면 서울 가서 새턴바스도 다시 한번 찾아뵙자고 아내와 약속을 했다. 뭘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좋은 의도와 마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재밌고 신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세상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새턴바스에 연락을 해봐야겠다.


숫자를 설정해 놓으면 단박에 원하는 온도의 물이 쏟아져 샤워가 즐거워졌다. 새턴바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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