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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02. 2019

11번

아침부터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1

사노 요코 씨가 독일에서 알게 된 최정호 씨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멋진 말을 남기려 애쓰다가 “그것은 두 개의 진리다”라고 중얼거리고는 바로 의식을 잃은 얘기가 나온다. 그것 때문에 요코 여사는 화가 났다고 한다. 그럴 때는 좀 더 현실적인 말, 예를 들어 “너희들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마당을 파면 돈이 든 금고가 있다”든가 “돈 많은 남자를 찾아 재혼하라”든가, 좀 더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야 하는데 학자인 척을 하시니까요,라고 투덜댄다. 사노 요코 여사가 데뷔 전부터 얼마나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문장을 구사했는지 알 수 있어서 아침부터 즐겁다.  

2

새벽에 일어나 경희현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왔다. 오늘 나는 대기번호 11번이다. 내 뒤에 온 12번 할머니가 “아유, 첫 타임에 들어가야 하는데 못 들어가겠네”라며 안타까워하신다. 대기하는 환자가 누워있는 베드 수를 말하는 것이다. 첫 타임이 몇 번까지냐고 물었더니 11번이란다. 얏호!! 기쁜 얼굴을 참느라 애를 많이 써야 했다.


3

할머니들이 셋 모이더니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86세 할머니께서 남편에게 뚜드려 맞고 산 얘기를 들려주신다. 6남매나 낳아 키웠는데 남편은 평생 춤만 추러 다녔고 할머니가 ‘노가다’를 뛰어 집을 샀다고 한다. 삼양동에서 사십 년 살았다고 한다. 시끄러워서 책을 못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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