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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22. 2019

단순한 진심이 주는 단순하지 않은 감동

조해진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평소 우리나라 작품에서도 이런 소설을 하나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모디아노의 소설보다 더 뛰어난 이야기와 마주치게 되었다.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이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프랑스 소설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자칫 흐름을 놓치기 쉬운 소설이었다면 [단순한 진심]은 어렸을 때 용산역 철로에 버려졌다가 구출된 후 또다시 버림받아 고아원을 거쳐 프랑스로 입양된 뒤 배우와 극작가로 성장한 문주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서영의 편지를 받으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분명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시작 부분만 읽으면 차갑고 원망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 소설은 뜻밖에도 따뜻한 인간애와 연대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문주라는 이름의 기원을 찾아 헤매는 다큐멘터리 여행은 정전이 되었던 날 촛불에 이끌려 들어갔던 이태원의 '복희 식당'에서 백순두부탕을 먹던 순간 연희와 복희 등 새로운 인연들을 만남으로써 더 크고 깊은 이야기로 확장된다. 감동의 소설이다. 문체는 김승옥이나  이제하, 한강처럼 투명하고 정갈하게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서사는 박경리의 그것처럼 유장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연희' '복희'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인 문주가 한국말을 겨우 이해하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인데, 이 설정이 결국은 그들의 일생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어젯밤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눈물이 나서 혼났다. 결국 맥주 두 병을 마시고 잤다. 어쨌든 소설을 읽고 나니 조금 행복해졌다. 독후감을 좀 더 길게 분석적으로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러면 어젯밤의 좋은 느낌이 날아갈 것 같아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이후 오랜만에 전율하면서 읽었던 소설이 아닌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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