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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04. 2020

“우리 집은 카드가 안 되는데”

삼선동에 있는 44년 된 음식점 <상주집>

토요일 오후, 아내가 고은정 선생의 지리산 제철음식학교에 가는 바람에 혼자가 된 나는 늦은 점심도 먹고 산책도 할 겸 동네 큰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삼선동 쪽으로 한참을 내려갔다. 걷다 보니 감자탕 해장국이라 쓰여 있는 작은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점심때가 지난 시간이라 안에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할머니 한 분만 앉아 계셨다. 내가 밥 돼요?라고 물으며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밥은 되는데... 우리 집은 카드가 안 되는데. 그러니까 그걸 알고 드시라고.”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현금 있어요. 나는 자리에 앉아 감자탕 식사도 되냐고 물으며 메뉴판을 보았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메뉴가 오천 원이었다. 되게 싸네요. 카드를 못 받으니까 좀 싸게 받아요... 할머니가 괜히 미안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대답을 했다.

 뭐가 제일 맛있어요? 다 맛있어요. 청국장도 맛있고... 청국장 주실래요? 할머니가 주방 쪽으로 가서 청국장을 끓이는 동안 나는 신기해서 가게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작은 음식점이 다 그렇듯이 가게 한 구석엔 할머니가 기거하는 한 평도 안 되는 장판이 있었고 그 위 벽엔 여행지에서 찍은 컬러 사진들이 주루루 수십 장 붙어 있었다. 몇 년이나 장사를 하셨냐고 했더니 44년 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올해 74세라고 한다. 정정하시네요, 그렇게 안 보이세요,라고 말했더니 나이는 그렇게 안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하도 서서 일을 하다 보니 이젠 몸 여기저기가 다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는 사람 안 쓰고 혼자서 일한다고 했다. 혼자서 그 오랜 세월 일을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여기서만 44년 간 일한 거냐고 물었더니 저 위에 '러키 마트' 있는 자리에서 할 때는 좀 크게 해서 그때는 사람도 썼었는데 마트 생기면서 여기로 내려왔다고 한다(카카오 지도로 럭키 마트를 검색해 보니 가까운 곳엔 없고 나중에 집에 가면서 살펴보니 몇 건물 위에 럭키 후레쉬 마트'가 있었다).

이렇게 싼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며 메뉴판을 다시 보니 국문과, 극예술연구회 명의로 붙여놓은 메모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아마도 한성대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인 것 같았다. 옛날 단골들은 지금도 다 알아서 찾아온다고 했다. 청국장이 나왔다. 두부를 넣고 끓인 청국장은 된장을 끓이듯 물을 많이 붓고 끓였고 밥은 미리 공기에 담아 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았다(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공기에 담아 전기밥솥 안에 보관한다고 한다)  함께 나온 반찬들도 시골집 반찬 같았다. 상주집이 경상도 상주냐고 물으니 할머니 고향이 경상북도 상주라고 했다. 상주에 사는 남동생이 청국장을 보내준다고 하길래 동생이 보내준 걸 할머니가 드셔야지 팔면 어쩨요? 하고 물으니 어차피 오래 두면 안 되는 거라 자기도 먹고 팔기도 하는 거란다. 고향에 한 번 가긴 가야 하는데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까 잘 안 가게 된다고 하며 웃었다.

할머니가 여행 다니면서 찍은 기념사진들 옆에 '2001(0) 2002(X)'라는 연도 표시가 있길래 저건 뭐냐고 물었더니 딸이 미성년자 받지 말라며 적어준 거라고 했다. 즉 2001년생에겐 술을 팔아도 되지만 2002년생부터는 안 된다는 소리인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지난 40여 년간 여기서 이 음식들을 팔아서 자식들을 다 키우고 시집 장가들을 보냈으리라.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시 메뉴판을 보았다. 오징어볶음도 있고 홍어무침도 있다. 제 아내가 오징어볶음 좋아하거든요. 다음에 술 마시러 한 번 올게요. 몇 시까지 하세요? 밤늦게까지 하죠. 뭐, 손님 있으면 열두 시 넘어서까지 있기도 하고. 어이쿠, 그렇게 늦게까지. 일요일엔 안 하시죠? 일요일에도 해요. 예식장 가거나 하는 거 없으면 일요일에도 열지 뭐. 아이고, 코리나가 빨리 끝나야 할 텐데...(코로나 19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지갑에서 오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드리고 잘 먹었다고 인사를 했다.

삼선교 길 양쪽으로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안에 있는 할머니 얼굴엔 검버섯이 약간 피었다. 저렇게 작은 식당에 44년을 버텨 온 한 사람의 드라마가 있었다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는 좀처럼 저녁 술을 마시지 않지만 이 집은 나중에 일부러라도 한 번 와야겠다. 왠지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뒤늦게 착해지는 걸까.

(*신용카드 안 받는 거 불법 아니냐는 독자분의 지적이 있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신용카드 가맹점이 아닌 경우엔 상관 없다고 하네요. 물론 혹시라고 할머니에게 피해가 길 수 있다면 이 글을 지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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