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Jun 05. 2020

지금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는 스티븐 킹의 소설

[스탠 바이 미]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스탠 바이 미]를 전자책으로 내려받아 읽는데 아무리 읽어도 끝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 분명히 중편소설이랬는데 왜 이렇게 길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은 1960년에 미국 메인주 남서부 캐슬록이라는 곳에 살고 있던 12살짜리 소년 네 명이 블루베리를 따러 나갔다가 행방불명된 레이 브라워라는 소년의 시체를 찾아 나서면서 벌어지는 하룻밤의 여행 이야기다. 로브 라이너 감독의 동명 영화로 먼저 봐서 그런지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유독 크리스에게 애정이 느껴졌다. 아마도 영화에서 크리스 역을 맡았던 배우 리버 피닉스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에 소설가가 된 고디의 회상 장면까지 읽은 다음에야 이 작품이 장편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노벨라'라고 불리는 마국의 중편소설은 우리와 기준이 좀 달라 장편에 가까운 작품도 중편이라 부른다고 한다).


[스탠 바이 미]를 소설로 읽으면서 놀란 점은 스티븐 킹의 섬세한 배경 묘사 능력과 개연성 있는 문장들이다. 크리스에 대한 아버지의 반복적인 폭력이나 형들의 패악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크리스가 사고를 치기에 적합한 캐릭터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도 좋았고, 테디의 아버지가 아들의 귀를 어떻게 난로에 짓이겨 불태웠지는 묘사할 때는 그로테스크한 공포소설을 많이 쓰는 작가의 장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숲 속으로 레이 브라워의 시체를 찾으러 간 소년들은 '한밤중에 그가 지금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무력한 상태일까' 하는 연민을 느끼면서 한 뼘씩 더 자라게 된다. 그건 이야기의 화자인 고디도 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스티븐 킹의 촘촘하고 수다스러운 문장을 따라 읽는 즐거움은 각별했다. 특히 평소에 죽은 형 데니스만 편애하던 고든의 부모님을 묘사한 식탁 장면은 기가 막히다.


내가 "버터 좀 주세요." 하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데니, 정말 군대에 꼭 가고 싶니?", 내가 "누구 버터 좀 주실래요? 하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데니, 시내에서 펜들턴 셔츠를 세일하던데 하나 사다줄까?", 그래서 버터는 결국 내 손으로 집어와야 했다. 내가 아홉 살이었던 어느 날 밤, 그냥 반응을 보고 싶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염병할 놈의 감자 좀 주세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데니, 오늘 그레이스 이모가 전화했는데 너하고 고든 안부를 묻더라."


이 소설 속엔 고든 라챈스가 처음으로 쓴 단편소설도 나오는데 고든은 젊었을 때 썼던 그 소설 이야기를 하며 "문체는 헤밍웨이를 베꼈고 주제는 포크너를 베꼈다고 스스로 평가절하하며 부끄러워한다. 그래도 난 고든 라챈스가 어렸을 때 나무집에서 친구들에게 해주던 무서운 이야기들을 소설로 써서 백만 달러도 넘게 버는 유명 작가(아마도 스티븐 킹 자신을 반영한 듯)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는 괜히 즐겁고 뿌듯했다. 그리고 어렸을 적 이야기들을 회상하는 방식도 따뜻하고 착해서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쯤 크리스가 싸움을 말리다가 죽었다는 것을 신문에서 본 고든이 우는 장면에서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영화처럼]이 떠오르는 걸 보면 성인이 된 남자들이 소년 시절을 떠올리는 이야기들에는 뭔가 공통적인 정서가 있는 모양이다.


스티븐 킹은 '지은이의 말' 조차도 재밌게 쓴다. 이 책 뒤쪽엔 1982년쯤 스티븐 킹이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글이 있는데 [캐리]를 비롯한 공포소설을 계속 써 내려가자 "그렇게 계속 이상한 소설만 쓰다가는 공포소설 작가로 낙인찍히지 않겠냐?"는 편집자의 염려에 그러면 어떠냐고 대처하는 스티븐 킹의 야유와 배짱도 볼 수 있다. 심지어 "빌은 아직도 편집 일을 하고 있으며 나는 아직도 공포소설을 쓰고 있는데 둘 다 정신과에 들락거리진 않는다. 그 정도면 성공한 셈이다."라고 너스레를 떤다.


[스탠 바이 미]는 작가의 말대로 '네 명의 시골 소년이 깨달음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엔 1960년대 미국 깡촌에서 10대를 보내던 아이들의 허세와 쌍욕과 순진무구함이 깔려 있다. 그리고 패기만만하던 시절 스티븐 킹의 진심이 들어 있다. 지금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는 소설 [스탠 바이 미]를 한 번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행히 해피 엔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