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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05. 2020

마스크를 쓰는 마음

김민섭 작가의 칼럼을 읽고

프리모 레비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어 보면 아우슈비츠의 포로들은 숟가락이 없어서 배급받은 음식은 개처럼 핥아먹어야 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배설물 속에서 며칠씩 뒹굴기도 했다고 한다. 괴로운 것은 자신에게 배설물을 묻히는 옆사람을 어쩔 수 없이 미워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자신도 결국 그들과 똑같이 옆에서 배설물을 생산해낼 존재이면서도 말이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서 '징역살이 하기에는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되는 여름보다는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는 겨울이 더 낫다'는 얘기를 했다. 옆사람을 오로지 37도짜리 열 덩어리로만 인식하게 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인 것이다. 자칫하면 타인을 '비말 덩어리'로 여기게 되는 팬데믹 상황이라 이런 글들이 생각난 것 같다.


타인을 비말 덩어리로 인식하게 되는 것을 막으려면 일단 마스크가 필수다. 오늘 낮에 너무 답답한 마음에 산책이나 하려고 동네에 잠깐 나갔다가 마스크를 내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실내나 길거리에서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일이 답답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우슈비츠나 감옥생활에 비하면 얼마나 쉬운 일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증오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와 김민섭 작가의 경향신문 칼럼 '나는 시민이다'를 읽었다. 작가와 페이스북 친구인 나는 요즘 '#몰뛰작당'이라고 해서 저녁이면 몰래 만나서 뛰던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의 단계가 강화된 이후로는 마스크를 쓰고 각자 뛰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는데 칼럼은 바로 그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작가가  “마스크를 하고 뛰니까 너무 힘들어요”라는 글을 올렸더니 어떤 사람이 “야외에서는 2m 이내에 사람이 없을 때는 벗어도 괜찮아요” 하고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원칙보다도, 그들 중 몇 명이라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나에게 공포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든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괜한 공포심을 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고 댓글을 달았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같은 공동체를 살아가는 시민임을 느낀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설사 옆에 누가 없더라도 공공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쓰자. 단지 비말이 튀는 거리가 아니라도 공포나 증오의 감정은 더 멀리까지 튈 수 있으니까. 마스크를 쓰는 마음에는 이렇게 서로서로를 미워하지 않게 하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민섭 작가의 칼럼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3030717&fbclid=IwAR32r5XVBFizULGwUrSqV3PEnaH3UN5QOHPO45uSupDiRVUJQwnWqT7nm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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